“선생님은 칠색잉꼬라는 이름의 남자를 알고 계십니까, 새가 아니라 예명입니다, 완전 아마추어에 배우는 아닙니다만... 굉장한 연기력을 갖춘 사람으로서, 부탁을 받으면 대역 전문으로 그 역을 맡아준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여기저기의 극단으로부터 그 남자의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그 대역이 정말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헛수고가 되어도 본전이죠, 시험 삼아 여기로 연락을 해봅시다.” 일본의 만화계에서는 “신(神)”으로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껏해야 “아톰을 만든 사람” 정도로 인식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는 그리 가볍게 인지하고 그냥 넘어갈만한 수많은 외국작가 중 한 명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야 “신(神)”까지는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만화작법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과(현재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새로운 장르로 각광받는 ‘웹툰’에 대한 논의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출판만화의 작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뭐라고 해도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만화의 강국은 일본이며, 그들의 ‘망가’는 그만큼 매체로서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 ‘망가’의 ‘원형’을 창조한 작가로서 데즈카 오사무는 필히 탐구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데즈카 오사무는 1928년생으로 1989년 사망했다. 오사카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의학박사이기도 한 그는 일본의 스토리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확립에 확실한 토대를 다진 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주소년 아톰”을 비롯, “리본의 기사”, “불새”, “밀림의 왕자 레오”, “블랙잭”, “붓다”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떤 수술이든 마법사처럼 해치우는 무면허 의사의 이야기 “블랙잭”이 가장 좋았지만,(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만화로 뽑히기도 한 작품이다) 미국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원작이 되었던 “밀림의 왕자 레오”나, 싯다르타 부처님의 생애를 극화로 구성해 철학적으로 고찰한 “붓다”같은 작품도 그 작품들의 출간년도를 감안할 때,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작품 속에서 보여준 만화에 대한 모든 것들, 즉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만화의 작법이라든가, 장편 극화라는 형식의 이야기라던가, 만화 속에서 살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명력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캐릭터의 힘이라던가 하는, 현재 모든 스토리 만화의 기본이자 기초가 되는 것들을 ‘전후 일본의 폐허’로 불리던 그 시대에 창조했다는 점에서, 데즈카 오사무라는 천재가 어째서 일본인들에게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출연료?...후후...그런 건 필요없습니다. 나는 바라시는 날짜만큼 대역을 맡겠소!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 만약 이 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극단은 못 본 척 해주길 바라오, 조건은 그것뿐이오.” 여기에 소개하는 “칠색잉꼬”는 누구도 그의 진짜 얼굴을 모르는 천재 도둑을 주인공으로 한 모험활극으로 주인공인 괴도 “칠색잉꼬‘는 연극무대이든 비즈니스 모임이든 간에 자신에게 의뢰를 해오면 원하는 대역을 완벽하게 연기해주고 그 대가로 그들에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훔치는 변장전문 도둑이다. 그의 맨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그의 성장 배경이나 인간관계를 비롯한 일체의 신상정보도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가 지정한 수신함에 우편으로 써서 의뢰를 부탁하면, 잉꼬가 그려진 카드를 들고 나타나 의뢰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한다. 주로 연극무대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대역전문 아마추어 배우이지만 그의 연기력은 가공할 수준이어서 오히려 원래 배우보다 더 관객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다고 한다. “후후, 거기 계신 분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소? 그럼 알려드리지요, 첫날 초대 손님인 각계의 명사 중에서 가장 비싼 보석 또는 금품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느샌가 도둑을 맞게 되오!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도난을 당하는 거요! 물론 대사건이 되겠지, 하지만 범인은 불명이고 극장도 극단도 관계없는 걸로 알려질 거요!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소!” 이번에 학산문화사에서 ‘테즈카 오사무 걸작선’을 한국어판으로 출간하게 되면서 첫 번째 작품으로는 “붓다”(현재 4권까지 발행)를, 두 번째 작품으로는 “The crater”(현재 2권까지 발행, 3권으로 완결 예정)를, 세 번째 의 작품으로 “칠색 잉꼬”를 출간하였다. 일본에서야 굉장히 의미 있는 복간사업이겠지만, 과연 한국에서도 그의 업적과 가치를 다시금 독자들이 평가해 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전설의 명작”들로 인구에 회자되며, 그간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수입되지 않았었던 산업계의 사정도 있겠지만, 솔직히 지금 시대의 스타일리쉬한 일본 만화나 한국 만화들, 화려한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자란 한국의 청소년들이나 예전부터 만화를 봐오던 만화애호가들이라 해도, 그저 매우 ‘올드한 느낌의’ 만화일 뿐,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학구적인 시선으로 이 작품들을 바라본다면 그의 천재성에 놀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블랙잭”에서 보여 지는 이야기 형식이나 캐릭터의 느낌이 데즈카 오사무의 개성이라고 항상 생각해왔고, “칠색잉꼬”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이나 느낌을 누군가가 제일 처음 만들어내었고, 그것이 지금도 후배작가들에게 ‘기초’로서 받아들여져 배움의 토대가 된다면 그것은 ‘위대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억측이 심하시군, 형사님. 난 단지 연극을 좋아하는 도둑이오, 좋아하는 연극을 해주길 의뢰받으며 그 나름의 보상을 받는 남자지, 잘 있으시오! 기회가 되면 또 봅시다.” 첨언을 하자면, “블랙잭”이 데즈카 오사무가 의사로서의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의학 지식을 활용해 수많은 기상천외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칠색잉꼬”는 연극과 영화, 그 원형이 되는 소설이나 이야기 등을 아주 자세히 소개하면서(이야기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작품이다. 첫 화인 “햄릿”부터 1권에 소개되는 연극들이 꽤 된다. 그 외에는 형식과 캐릭터, 이야기의 느낌 등이 “블랙잭”과 매우 유사한 작품이다. “The crater”처럼 작가의 세계관을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강렬히 보여주는 단편집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