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런트
“카나에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 목욕탕 주인!.... 목욕탕을 물려받으려고? 그럼 결혼해서 남편이랑 같이 해야겠네, …..필요 없어! 카나에랑 아빠랑 키지마 아줌마 셋이서 할 수 있어!....카나에는 뭐든지 혼자서도 잘하네.” Undercurrent ...
2011-09-30
김진수
“카나에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 목욕탕 주인!.... 목욕탕을 물려받으려고? 그럼 결혼해서 남편이랑 같이 해야겠네, …..필요 없어! 카나에랑 아빠랑 키지마 아줌마 셋이서 할 수 있어!....카나에는 뭐든지 혼자서도 잘하네.” Undercurrent 1. 낮은 흐름, 물 바닥의 흐름, 저류(底流) 2. (표면과 모순되는, 특히 부정적인 감정의) 암류(暗流) “오무라 씨한테 들으셨죠? 죄송하지만 저희는 한동안 임시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거예요, 어차피 누구한테든 들으실 테니 미리 말씀드리는데, 두 달쯤 전에 이곳의 공동경영자 -결국 제 남편이지만- 가 실종됐어요. 현재로선 사건에 휘말렸는지 본인 의사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우리 부부와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까지 세 사람이 해왔기 때문에 졸지에 영업을 할 수 없게 돼버렸죠, 이대로 문을 닫아버릴까도 했지만 아직 섣불리 앞일을 결정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단골 손님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일단 영업을 계속하기로 했어요….. 설령 그 사람이 돌아온다 한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한 마디로 앞일에 대해 아직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어쩌면 호리 씨를 쭉 고용해 영업을 계속할지도 모르고요….하지만 확실히 약속드릴 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인 고용이 되는 셈이죠, 매우 불안정한 조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실종된다. 사고를 당한 건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종적을 감춘 건지 알 수가 없다. 홀로 남은 아내는 불안함과 초조함, 짜증과 분노의 시기를 거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저 멍한 상태로 스스로를 방치하는 시간을 겪게 된다.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아내는 결국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남편은 도대체 왜 떠났을까? 불륜? 권태기? 말 못할 사정?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자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답답한 문제일 뿐, 생각에 빠지면 빠질수록 출구가 없는 터널에 빠진 아내는 삶의 의욕마저 점차 잃어간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자살과 그렇지 않은 자살은 차이점이 뭘까요? 자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보도되지 않잖아요, 유명인사나 특수한 형태의 죽음뿐 아니라….평범한…아니,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투신이나 목을 맨 자살도 기사가 되잖아요. 그렇게 놓고 보면 보도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이유…..하지만 사람이 죽으려는 이유에 특수하다거나 평범하다는 구분이 있을까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사랑? 아마도 답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있다.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진심을 알 수 없을 때, 그 때만큼 자신을 힘들게 하고 그 순간만큼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은 없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토요다 테츠야의 “언더커런트(undercurrent)”는 바로 이 전제에서 출발해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 독자에게 진지하고 조용하게 묻는 작품이다. “저기, 아까부터 쭉 얘기를 들으며 생각을 해봤지만, 뭔가 딱 떠오르지를 않네요, 남편 분인 사토루 씨의 개성이랄까 그런 게 말이죠, 인상이 좋다, 다른 사람을 잘 챙겨준다, 책임감이 있다, 그런 말들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본래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 조작에 지나지 않죠, 얘기를 들을수록 제게는 남편 분이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본질을 보이지 않으려는 은폐 작업을 계속했다는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관계”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길들인다는 거야”라는 ‘어린 왕자’의 유명한 문구도 있듯이, ‘타인’이라 불리는 다른 존재와 내 속의 무언가를 공유해가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우주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결코 비약이 아니다. ‘통신(通信)’은 한자로 풀어 쓰면, 서로 통했다고 ‘믿는 것’이다. 정말로 통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언어나 행동은 매우 부정확한 것이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자기확신에 찬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이 작품이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대하는 한 여자의 상태를 조용하고 쓸쓸하게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 즉 세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 불리는 ‘소통(疏通)’의 명확한 한계점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흐음…그럼 하나만 묻겠는데, 누군가를 안다는 게 뭡니까?” 위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작품에서 여자 주인공인 카나에를 두고 두 명의 남자가 스쳐 지나간다. 한 명은 너무나 자상했고 의지가 되었으나 갑자기 실종된 남편 사토루고 또 한 명은 남편이 실종된 후 목욕탕의 일꾼으로 들어 온 불가사의한 남자 호리다. 주인공인 카나에는 남편을 찾기 위해 고용한 사립탐정 야마자키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남편의 모습과 ‘실제’ 남편의 모습의 차이를 점차 알아가게 된다.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많은 모습이 사실은 거짓이었고, 야마자키의 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남편의 황당한 모습이 사실은 진실이었다는, 이 짜증나는 상황은 카나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남긴다. 남편이 떠나고 새롭게 카나에의 곁에 등장한 남자 호리는 작품의 결말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카나에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카나에와 진정으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남자다. 그러나 호리는 카나에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며 그저 항상 곁에만 있어줄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나에의 곁을 떠나려던 호리가 기다리던 버스를 그냥 보낸 채 다시 카나에의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은 무언지 모를 묵직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언더커런트(undercurrent)”는, 쉬운 작품도, 재미있는 작품도 아니다. 오히려 답답하고, 심난하고, 너무나 조용한, 매우 무겁고 진지한 작품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무거운 진실 하나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이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몇 분이 지나면 독자들은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