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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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과 하이드와 배심원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재판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어렵다’, ‘몇 년씩이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법률 전문가만으로는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다’….이렇게 기존의 재판 제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이전부터 끊임없이 있었던 것은 여러분도 잘...

2011-09-27 유호연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재판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어렵다’, ‘몇 년씩이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법률 전문가만으로는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다’….이렇게 기존의 재판 제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이전부터 끊임없이 있었던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테지요. 이러한 비판에 의해 도입된 것이 바로 ‘배심원 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께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니 부디 자유롭게 발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간이 자연에 맞서 ‘사회’라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룰(rule)’의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인간사회의 진보와 더불어 ‘룰’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왔다. 때로는 ‘도덕’이나 ‘윤리’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종교의 ‘교리’라는 이름으로, ‘룰’은 알맹이는 그대로 놔둔 채로 자신의 겉모습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사회와 인간의 변화에 발맞추어 온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형태의 ‘룰’ 중에서 가장 ‘현대사회’에 적합하고, 가장 ‘인간의 욕망’을 기초로 만들어 졌으며, 가장 ‘자본주의적’인 ‘룰’은 ‘법’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영리추구이며,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이나 인격, 권리 등을 침해 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사회정신에 걸맞게, 가장 견고하면서도 부드럽게 자신의 겉모습을 변화시킨 ‘룰’이, 바로 현대 사회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슷한 골조를 유지하며 사용되고 있는 ‘법’일 것이다. “피해자 여동생의 목격증언을 뒤집을 거야! 하지만 피고인은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 거짓말을 내가 ‘진실’로 만들어주면 되는 거야! 내가 배심원들을 속이겠어!!” 현대사회에서 ‘법’의 구조는 ‘재판’이라는 형태를 통해 집행된다. ‘재판’에는 피고라 불리는 피의자를 기소하는 검찰과 피의자를 변호하려는 변호사가 서로간의 증거를 내세우며 논리적인 싸움을 진행하고, 그들의 싸움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가려서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는 판사와 배심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배심원 제도는 서구의 여러 국가에서 활용되는 것처럼은 우리나라 법정에서 적극적인 형태로 도입되지 않았고 현재는 시험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지킬과 하이드와 배심원”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의 법정을 무대로 배심원 제도가 활용되는 재판을 사건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이드’라 불리는 이계의 존재와 맺은 계약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젊은 판사 ‘지킬’이, 배심원과 증인들을 ‘요리’하여 진정한 ‘재판’의 길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에피소드로 구성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재판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는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계속적으로 고민해야만 하는 가장 큰 사회적 화두 중 하나다.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조작할 수 있다. 때로는 누명을 쓸 수도 있고, 때로는 억울하게 패배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하여 치밀한 에피소드를 짜고, 자신의 수명을 조금씩 없애는 대가로 ‘진실’을 알 수 있는 젊은 판사를 등장시켜 ‘인간이 인간을 재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