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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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제바브

“저는 그 아기씨를 모시는 시녀 악마, 힐데가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은…우리 마족의 왕이 되실 분, 존함은…카이젤 드 엠퍼러너 벨제바브 4세…즉, 마왕이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강에서 떠내려 와 인간의 손에 맡겨진 마왕의 아들,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마...

2011-09-21 김현우
“저는 그 아기씨를 모시는 시녀 악마, 힐데가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은…우리 마족의 왕이 되실 분, 존함은…카이젤 드 엠퍼러너 벨제바브 4세…즉, 마왕이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강에서 떠내려 와 인간의 손에 맡겨진 마왕의 아들,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마왕이 보낸 무서운 존재, 그가 각성하는 순간 온 인류는 멸망하지만 대리부모를 맡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운명이 결정된다. 설정만으로 보면 하드코어 판타지 같지만, 사실은 코미디다. 마왕의 아들은 가짜 젖꼭지를 물고 다니는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고, 대리부모로 그를 맡은 인간은 흉폭하지만 귀여운 짓만 하고 다니는 사고뭉치 불량배 고등학생이다. “벨제바브”는 판타지와 갱스터 장르를 적절하게 혼합해 독자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고자 만들어진 재미있는 만화다. “왜냐하면 당신은…간택되고 말았으니까요…마왕의 부모로” 작품의 설정에 따르면 ‘마왕의 부모’란, 마왕의 아들인 벨제바브가 인간계에서 그 방대한 마력을 끌어내기 위한 이른바 촉매 같은 것으로 벨제바브가 그를 잘 따르면 따를수록, 그 인간의 성정이 흉폭하고 대담하면 할수록 벨제바브의 체내에 잠재된 마력이 최고치로 발현된다. 그래서 작가가 주인공으로 삼은 불량학생 오가는 싸움에 있어서는 무패, 일단 한 번 붙었다 하면 상대가 다시는 덤빌 생각을 못하도록 잔인하게 밟아주는 무서운 고교생이다. 그러나 오가는 먼저 시비를 걸거나 약한 자를 괴롭히진 않으며 그저 걸어온 싸움을 받아줄 뿐이다. 불량배 외의 인간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면도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듯한 오가의 이런 성품은 작품의 색깔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는데, 귀엽고도 무서운 아기 악마 벨제바브가 오가와 짝패를 이루어 활약을 펼치는 내내 작품에 따뜻한 피가 흐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넌 마왕의 부모, 오늘부터 나와 함께 인간을 멸망시킬 훌륭한 마왕을 키워보자.” 이 작품은 현재 한국어 판으로 1권밖에 나와있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 때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우리나라 만화 “키드갱”과 상당히 유사한 분위기가 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림체도 비슷하다) 물론 이 작품에는 악마라는 설정이 가미되어 있어 확실한 판타지이지만, 폭력배와 짝을 이루는 아기라는 설정도 그렇고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웃음을 주는 방식이나 감동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정서가 “키드갱”과 매우 유사하다. “벨제바브”에는 상당히 유쾌한 웃음이 있고, 갱스터 만화의 장점인 화려한 액션씬도 있으며, 마법과 비술이 난무하는 판타지의 분위기도 있다. 이런 상이한 코드들을 뒤섞었는데도 실패하지 않고 오히려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바람 시원한 가을 날, 우울한 독자 분들이 있다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