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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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소울

“아침에 심한 두통으로 잠을 깼다. 요 며칠 이런 날의 연속이다. 3일 전 대판 싸우고 집을 나간 유지는 아직도 안 들어오고 있다. 같이 산 지 이제 겨우 반 년, 그런데도 벌써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니, 뭔가 맘에 안 들면 바로 집을 나가버리는 유지, 자상할 때와 차가...

2011-09-06 유호연
“아침에 심한 두통으로 잠을 깼다. 요 며칠 이런 날의 연속이다. 3일 전 대판 싸우고 집을 나간 유지는 아직도 안 들어오고 있다. 같이 산 지 이제 겨우 반 년, 그런데도 벌써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니, 뭔가 맘에 안 들면 바로 집을 나가버리는 유지, 자상할 때와 차가울 때, 어느 쪽이 진짜 그인지 모르겠다. 아마 오늘쯤 집에 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어와서 TV를 보고 있겠지? 그럼 좀 어색한 분위기 속에 밥을 먹고 섹스를 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2~30대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문화콘텐츠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요즘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미국 드라마 “SEX AND THE CITY”는 2~30대를 넘어 40, 50대의 여성들에게까지 ‘여자’로서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새로운 ‘룰(rule)’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SEX AND THE CITY” 이전에도 여성들의 삶과 사랑, 직장과 일, 인간관계 같은 것을 스토리의 중심에 둔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그 드라마가 단순한 드라마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동경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문화영역으로까지 진화하자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새로운 수요의 시장’으로서 이를 정의하고 회사별로, 브랜드별로 앞 다투어 비슷한 내용과 형식을 띤 문화상품들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가 활성화 된 요 근래에, 한국에서도 눈에 띠게 성장을 한 분야가 직장여성의 취향을 반영한 뮤지컬 같은 공연 예술분야나 미술품 전시,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분야다. 소설과 만화, 에세이 등의 출판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우와, 목욕 가운이 땀에 젖어서 묵직해!” “그 무게는 방금 전까지의 당신 자신이야. 쌓아뒀던 짜증과 스트레스를 전부 그 녀석이 빨아들여 준 거지.”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남자로서 약간은 한심한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여성 취향’ 중심으로 변화된 문화산업계의 경향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주식, 부동산, 자동차외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고, 이들에게 ‘문화’란 여자와의 데이트를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남자들이 여자를 만날 때 가장 싫어한다는 ‘쇼핑 따라가기’와 ‘뮤지컬 공연’이나 ‘미술관 전시’ 같은 ‘문화적인 것’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것이라고 남자들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들이 온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비약이 너무 클 수도 있지만 말이다) 돈을 쓰지 않는 고객들을 위해 상품을 개발하는 회사는 없다. 그렇다면 돈을 쓰는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 방식을 진화시켜야 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여성들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그 위치는 공고해질 것이다. 문화의 첨단을 걷는다는 홍대나 청담동 거리의 카페들에 가보면 이러한 자본주의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거리 곳곳에 내붙는 공연이나 콘서트 포스터만 봐도 이러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책 소개 글치고는 서론이 너무 장황했으나,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다. 감성적으로 메마른 남자들은 요즘 시대엔 결코 연애에 성공할 수 없다. (속된 말로 ‘작업’조차도 힘들 것이다) 여자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자신과 문화적인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감성적인 파트너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들이여, ‘문화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라. 여자들과의 데이트를 성공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냥 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 여잔 몸의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아, 몸의 힘을 믿지 않는 전형적인 타입이지, 원래 타고난 몸 자체는 멋진데 자기 자신을 부정해서 망치고 있어”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BODY & SOUL”은 요즘의 경향을 반영한 만화치고는 아주 독특한, 그리고 유익한 면이 강조된, 좋은 작품이다. ‘육체’와 ‘정신’, ‘건강’과 ‘심리’라는 양면적인 요소를 아주 잘 엮어서 아주 그럴듯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놓았다. 여자 주인공인 타지마 미쿠는 25세의 직장여성으로 6개월째 동거하고 있는 애인과 현재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육체적인 이상이 오는 것은 당연지사, 싸우고 집을 나간 지 3일 만에 돌아온 애인과 또 다시 싸워버리고 만 미쿠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클럽에서 만취할 때까지 술을 먹고 거의 정신을 잃는다. 그 때 나타난 흑기사가 남자 주인공인 린타로, 여성들에게 ‘카리스마 마사지사’로 잘못 알려진 그의 직업은 ‘정체사(整體士)’로 정신을 잃은 미쿠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따뜻한 목욕 한 번과 목욕가운을 입히는 것만으로도 미쿠의 고질병인 두통을 깨끗이 치료하고 컨디션을 회복시켜준다. ** 정체(整體)란, 지압(指壓)이나 마사지에 의(依)하여 등뼈를 바르게 하거나 몸의 컨디션을 좋게 한다는 뜻으로 한의학에서 유래된 말이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의 발생은 주로 저항 능력의 약화를 전제(前題) 로 하여 생각한다. 또, 어느 한 질병의 발생을 단순히 몸의 일부분에 국한된 이상(異常)으로 보지 않고, 몸 전체의 생리적인 부조화(不調和)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이 한의학의 독특한 정체(整體) 관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체의 조직이나 기관, 내장기는 각기 분리되어 따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 활동이라는 대전제 아래 기능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한의학에서의 치료 방법은 병균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체의 저항력을 기르는 데 맞추고 있으며, 질병을 치료할 때에도 이러한 상호 연관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여 치료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고 국부적인 이상만을 제거하려고 할 때 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두통에 진통제를 먹고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먹으면, 통증이나 열은 제거될지 모르나 그 원인은 몸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올바른 치료 방법은 두통이나 열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그 생리적인 부조화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 “BODY & SOUL”은 임상대상이자 여성들의 대표로 여자 주인공인 직장여성 미쿠를 놓고 치료사이자 이상적인 남성으로 린타로를 엮어 하나의 로맨스를 만들어간다. 로맨스 중간 중간에 전문적인 정체사의 조언과 감수를 얻어 몸의 컨디션을 회복시키고 여성들의 신체를 바로 잡아주는 일상적인 치료법들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의학지식과 로맨스를 아주 자연스럽게 엮어놓은 작품인데,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현대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읽어두면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라는 캐치 문구처럼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지위 따위가 아니라 일상 속의 작고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