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사람
“그럼….떨어지지 않으면 되잖아, 나는 혼자서 올라갈 거야.”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고 색깔 짙은 전문 산악만화를 만났다. 제목은 “고고(孤高)한 사람”, 작화가는 사카모토 신이치, 스토리는 나베타 요시오, 원작은 니타 지로의 “고고(孤高)한 사람”이라는 동명의 소...
2011-08-29
김진수
“그럼….떨어지지 않으면 되잖아, 나는 혼자서 올라갈 거야.”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고 색깔 짙은 전문 산악만화를 만났다. 제목은 “고고(孤高)한 사람”, 작화가는 사카모토 신이치, 스토리는 나베타 요시오, 원작은 니타 지로의 “고고(孤高)한 사람”이라는 동명의 소설이다. 현재 한국어 판으로는 3권까지 출간되어 있으며 “클라이밍”이라는 웅장하고 가슴 떨리는 세계를 심도 깊고 드라마틱하게 다룬 수작(秀作)이다. 맨손으로 암벽을 오르는 남자들을 우연히 TV에서 본 후로 난, 내내 그 두렵고도 멋진 스포츠에 대해 어떤 환상이 있어왔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까마득한 수직 암벽을 오르는 그 사람들은 그 아득한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고소공포증도 있는데다 저질 체력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직접 체험은 꿈도 못 꾸겠고, 그저 궁금하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을 받은 산악만화는 다니구치 지로의 “신들의 봉우리”였다. 작품의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장면에서 난 평생 이해할 수 없을 어떤 묵직한 감동을 느꼈고, 이 묵직한 감동의 정체를 알 수 있으려면 등산이라도 해봐야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 고민의 상당 부분이 해결되었고, 클라이밍이라는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아주 자세하게 체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너는 이미 산에 반했어,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 주인공인 모리 분타로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세상 누구와도 교류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폐적인 증상이 있는 고교생이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친구의 자살사건에 휘말려 전학을 오게 되면서 원래부터 닫혀있던 모리의 마음은 점점 더 단단하고 무거운 껍질로 뒤덮여간다. 그러나 새로 전학 온 요코스카 북 고등학교에서 산악부 소속의 미야모토를 만나면서 모리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우연한 내기에 휘말려 학교건물의 수직 벽을 맨손으로 오르면서 난생 처음 겪는 설명할 수 없는 신선한 기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모리의 인생은 마치 무언가의 운명에 이끌린 것처럼 산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앞으로 모리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거대하고 고고한 존재가 버티고 있었다. “그 로프를 버린 순간, 내 주변에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타카토리의 바위뿐….그 순간 분명 나는 혼자가 될 수 있었다.” “고고한 사람”에는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녹아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회와 인간 등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관계’들이 ‘산(山)’이라는 하나의 곧은 줄기를 타고 거대하고 뜨거운 이야기로 변모해 간다. 질주하듯 똑바로 달려나가는 이런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 이런 류의 만화를 원하는 독자 분이라면 틀림없이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