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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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우리 학원에서 만화반 애들이 제일 거지잖아. 만화는 너희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좋아하고 싸게 접할 수 있는 장르야, 근데 왜 유독 가난한 애들이 만화를 직접 그리겠다고 나서냐 이거지. 요즘은 노는 데도 돈이 드니까 돈 없는 애들은...

2011-08-05 석재정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우리 학원에서 만화반 애들이 제일 거지잖아. 만화는 너희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좋아하고 싸게 접할 수 있는 장르야, 근데 왜 유독 가난한 애들이 만화를 직접 그리겠다고 나서냐 이거지. 요즘은 노는 데도 돈이 드니까 돈 없는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만화를 택하는 빈도가 높겠지, 그러다 보면 점점 친구도 사라지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욱 만화에 빠져들어, 친구도 없이 한 가지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성격이 이상하잖아,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수학이라거나 음악이라거나 하면 성격이 이상해도 사람들은 괴짜 혹은 천재라고 부르지, 근데 그 분야가 만화라면? 그냥 싸이코야, 잘해야 오덕이고. 오덕에서 멈추면 회생 가능성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싸이코들이 직접 만화를 그리겠답시고 기둥뿌리 빼서 분수에도 안 맞는 입시 미술학원으로 모여드는 거야, 그렇게 되면 옆에도 싸이코, 뒤에도 싸이코, 각자의 싸이코 파워가 서로 씨너지를 일으켜서 ‘굽신굽신’이니 ‘털썩’이니 하는, 표기는 하되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의성어, 의태어들을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싸이코 오브 싸이코로 거듭나는 것이지. 이미 일반인의 감각을 잃어버린 후에는 잘 팔리는 만화를 그릴수도 없고(잘 나가는 작가들 보면 비 만화 전공자들이 아주 많다는 거 알지?) 다른 일을 찾으려 해도, 연애를 해보려 해도 어떻게 하는지 기억도 안 나. 결국 가난한 싸이코 만화가는 가난한 싸이코 만화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가난한 만화가 부모의 영향으로 줄창 만화만 보면서 성장하다가 싸이코가 되어 또 다시 만화가를 꿈꾸게 되는 지옥의 무한루프에….진입한 기분이 어떤가?” 한국 만화산업이 어려워진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무언가 확실한 계획을 세워 다시금 그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도 말이 안 될 만큼, 이미 한국 만화산업은 심각하게 망가져 있다. 겉으로야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새로운 작가들이 발굴되는 것을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처럼 떠들고들 있지만, 그래봐야 속으로의 실상을 보면, 어차피 적은 원고료로 제작된 무료만화일 뿐이다. 모든 산업은 자체적인 순환구조를 가져야 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데, 현재로서는 투자 ?기획?제작?마케팅?유통-이익창출의 구조를 거쳐 다시 투자로 돌아가 다시금 다른 콘텐츠를 창출하는 건강한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한국 만화산업에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만화라는 콘텐츠로 수확할 수 있는 명확한 사업적 이익이 투자자들에게 보이질 않기 때문이며, 전체적인 순환고리를 운용하는 사업자들에게 만화라는 콘텐츠는 운용고리가 이미 망가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미래의 한국인들에게 가장 안타깝고 가장 안 좋은 점은, 좋은 작가들을 계속적으로 배출해낼 시스템 자체가 망가져 버리는 것이며, 좀 더 비관적으로 비약한다면, 언젠가는 이 땅에서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너무나 장황하고 서글픈 서론이 되어버렸지만,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가끔씩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젊은 천재들은 태어나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 만화계의 남자 작가들 중에서 가장 주목 할만한 젊은 피를 꼽으라면 오프라인 쪽에서는 최규석, 온라인 쪽에서는 하일권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 두 명의 젊은 작가들은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고,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빛나는 재능과 그 재능을 받쳐 주는 실력이 있다. “정선생 월급 누가 줘요? 학원 안 다니는 애들이 월급 줘요? 월급은 학원 다니는 애들이 주는데 왜 안 다니는 애들 걱정을 하고 있어요? 돈 주는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당연한 걸 헷갈리고 그래요? 정선생이 아직 어려서 그런다는 건 알겠는데….” 최규석의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은, 개인적으로, 최규석이 또 한 번의 도약을 통해 이전의 껍질을 깰 수 있게 해준, ‘아프락서스의 알’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전까지의 최규석은 다소 거칠었고, 때론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으며, 가슴을 뜨겁게 해줄지언정 진정한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는 하질 못했다. 무언가 10 정도 모자랐던 느낌, 너무나 힘있고 빛나는 젊은 작가임에는 틀림없는데 무언가 극히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작품 서두에 최규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대부터 30대 초반의 몇몇 시기에 미술학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한 만화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보지 않으면 나았을 테지만 매일같이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들을 위해, 아니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내가 퍼부었던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만큼을.” “울기엔 좀 애매한”은 입시미술학원에서 만화를 전공하는 고교생과 재수생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들과 그 주변인들, 그리고 학생들의 부모들과 그 주변의 삶을 아무런 가공 없이, 그저 리얼하고 치밀하게 보여줄 뿐이다. “100c”에서 보여주었던 시대상황의 치열함이나 읽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불지르는 감정의 증폭은 없다. 그런데, 그저 담담하게 아이들의 일상을 보여줄 뿐인데도, 이번 작품에서는 읽는 이의 마음을 강하고, 둔탁하게 때린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울컥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10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이 아이들을 위해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나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아니 형한테 꼭 그러란 건 아니고…나도 곧 취업 나갈 거니까….그냥 형 보면…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최규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분명히 진일보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그가 바라보는 이상향이 어떤 것인지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타인들에게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했다. 이 작품에서 최규석은 과도한 감정이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어깨에 힘을 뺀 편안한 자세로 일상을 탐색한다. (물론 편집후기를 보면 작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지만^^)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이 방향이 훨씬 좋다. 최규석이라는 작가 안에서 소화불량으로 쌓여있던 무엇인가가 완전히 소화되어 작가의 핏줄로 스며든 느낌이 난다. 그래서 아마 이 작품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게다. 어쩌면 그는 그 동안 너무나 힘이 들어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살며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