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미야코자와를 봐, 저 녀석은 여자라 공식전에 나갈 수 없지만 글러브나 스파이크는 누구보다도 깔끔하게 손질해!” 미시마 에리코 : 첫 연재작인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로 스포츠 만화의 거장인 아다치 미츠루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 대학 졸업 후 “갤러...

2011-08-03 김현우
“미야코자와를 봐, 저 녀석은 여자라 공식전에 나갈 수 없지만 글러브나 스파이크는 누구보다도 깔끔하게 손질해!” 미시마 에리코 : 첫 연재작인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로 스포츠 만화의 거장인 아다치 미츠루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 대학 졸업 후 “갤러리 페이크”의 작가 호소노 후지히코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며 만화가의 꿈을 키우다, 모교의 계열 고등학교가 통칭 봄의 고시엔이라 부르는 선발 고교야구대회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고교야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58회 스피리츠상을 수상하고, 그 후 2008년 8월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로 연재를 시작했다. ? 책 머리글에서 발췌 “뭐? 자와는 야구도구 손질은 완벽한데 겨드랑이 손질이 허술해?” 매우 독특한 만화 한 편이 등장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는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일본 만화산업계의 저력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순정만화도 소년만화도 아닌 것이, 스포츠 만화도 러브코미디도 아닌데도, 묘한 여운과 감수성을 선물하는, 매우 유니크한 만화다. 공식시합에는 나갈 수 없는 여자의 몸이지만 고교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한 여고생의 담담한 일상을 부드럽고 잔잔한 감성으로 다루고 있는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는, “이 작품은 이러이러하다”라고 무어라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작품이다. 이런 독특한 작품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생소해서 일 수도 있고, 여성성도 남성성도 강조되지 않은 중성적인 색깔이 매우 강한 작품이어서 어느 한 쪽으로 몰아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담할 수 있다. 내 눈앞에 있는 빡빡머리 녀석들은 틀림없이 야구부다. 물론 온몸이 검고 빡빡머리인 고교생을 전부 야구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까부터 이 녀석들은 ‘야구부’라는 아우라를 마구 내뿜고 있다! 보시라, 이 (쓸데없이) 기합이 들어간 눈썹과 바싹 민 면도 자국, 게다가 이 ‘터틀넥’, 아, 야구부가 즐겨 입는 이 하이넥 언더셔츠 말이다. 내 고교시절 동급생도 괜히 쓸데없이 평소에도 ‘터틀넥’을 입고 다녔다. 옷이 항상 목덜미를 덮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나? 신기하게도 프로야구 선수의 사복 또한 ‘터틀넥 비율’이 높으며! 그렇지 않으면 뭔가로 목덜미를 휘감는다! ‘금목걸이에 손가방’ 패션은 이제 한 물 갔지만 기본적으로 비싼 옷을 걸치고 있어도 다들 왠지 촌스럽다. 하긴 축구선수와 달리 야구는 경기 특성상 패션센스를 기르기도 힘드니까… 아까부터 묵묵히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삼국지’를 읽고 있는 이 교복 차림의 여고생은 ‘터틀넥’들의 일행일까, 그렇다면 ‘터틀넥’의 매니저? 아니면 우연히 그냥 옆자리에 앉았을 뿐인가….? …..아, 몸이 탄 흔적이 ‘터틀넥’이다…..”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의 진행은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일본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일본 단편 영화들이 매우 일상적이고 조용하게 주위 풍경을 훑으며 등장인물들을 카메라로 쫓다가, 아주 짧은 순간 드러나는 삶의 비밀 한 조각을 관객에게 살며시 선사하듯, 이 작품의 연출 방식 역시 그렇다. 매 컷마다 야구부원 자와 씨의 심심한 일상을 조용히 훑어 나가다가 마지막 순간, 아주 작은 감성 하나를 독자에게 살며시 던진다. 그런데 작가로부터 던져진, 이 미묘하고 독특한 작은 감성 한 조각이, 읽는 이에게 주는 잔잔함과 청량감이 만만치가 않다. 꽤 묵직한 직구를 갑작스럽게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저건 미야코자와 리사잖아… 닛센고교의 유일한 여자 야구부원,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규정 때문에 시합에 출전할 수는 없어도 동료들과 좋아하는 야구를 위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기사를 아사든가 뭐든가 사이트에서 봤어.”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에는 특별한 드라마는 없다. 무언가 일관된 스토리를 가지고 감정의 두께를 쌓아나가며 장대한 결말을 향해 직진하는 작품이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고, 실제로 야구부 활동을 하고 있는 어떤 여고생의 심심한 일상 스케치일 뿐이다. 그래서 밋밋하다. 그런데 독특하다. 그리고 애잔하면서도 청량감을 느끼게 된다. 일본 만화의 거장 중 한 사람인 아다치 미츠루가 이 작품을 보고 극찬했다는 사실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다치 미츠루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만화로 개척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의 감수성을 발견해낸 신인 작가임은 분명하다. 지겨웠던 장마가 끝나고 서서히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열리는 이때, 신선한 만화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독자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