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미래
“행복은 숙명의 지배를 받는다. ? Friedrich W. Nietzsche” 한국 만화에서 보기 드문 장르인 “정통 느와르”가 1980년생(生) 이영곤이라는, 젊은 신인 작가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밝은 미래”, 진철수, 이우열이라는 스토리 작가...
2011-07-22
유호연
“행복은 숙명의 지배를 받는다. ? Friedrich W. Nietzsche” 한국 만화에서 보기 드문 장르인 “정통 느와르”가 1980년생(生) 이영곤이라는, 젊은 신인 작가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밝은 미래”, 진철수, 이우열이라는 스토리 작가가 두 명이나 붙어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원안이 되는 동명의 단편을 서른도 되기 전에 만들었다는 것을 보아 상당한 재능을 지닌 신인임에 틀림없다. (이 단편으로 2007년도에 제 5회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이참에 실력 좋은 배달원으로 한번 바꿔보시죠?” 아무런 심적 대비 없이 그냥 읽었다가는 무척이나 음울하고 심난한 상태에 빠지기 딱 좋은 이 작품은 현재 미디어 다음의 만화 속 세상에서 웹툰으로 연재되고 있다. 단행본이 먼저 나온 후에 웹진에 무료연재를 하게 된 것으로 보아 작가와 출판사 간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독자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작품을 즐기면 된다. “어렸을 때 누군가 팡, 팡, 팡, 뒤통수에 못총을 발사했다. 못총은 뇌로 연결되는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내 몸의 모든 통신을 두절시켰다. 그 뒤로 나는 뜨거움이나 간지러움, 통증 따위는 물론이고 단맛이나 신맛도 느낄 수 없었다…무, 감, 각….내 뒤통수에 못총을 쏜 놈을 찾아서 갈갈이 가루를 내어 뇌를 두부처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연어, 정어리, 고등어, 앤초비, 호두 그리고 호박씨 따위에 섞어 아작아작 씹어먹고 싶다. 녀석의 영혼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내 몸의 통신을 홀라당 회복시킬 때까지…희망은 오직 그것이다.” 주인공인 현태는 어릴 적 사고로 신경이 손상되어 몸의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무서운 사내다. 통증 자체를 알지 못하기에 자제할 필요도, 무서운 것도 없는 그는, 보석 밀거래를 업으로 삼는 종로의 잔인한 조직폭력배들조차 ‘괴물’이라 부르며 두려워 피하는 존재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앵벌이로 팔려 나와 세상의 밑바닥만을 처절하게 훑고 올라온 그에게 오직 하나 소원이 있다면, 잃어버린 자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두통, 치통, 생리통, 요통…온갖 통증에 시달리는 인간보다…아픔을 모르는 얘들이…더 행복할지도 모르잖아요?” “밝은 미래”는 아주 독특한 설정의 주인공인 현태를 중심으로 종로 보석시장의 이면인 ‘밀거래 시장’을 파헤치는 탄탄한 스토리가 압권인 작품이다. 1권의 중간쯤 현태의 감각에 관련된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는데, 의학적으로도 수수께끼인 현태의 음울한 인생사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충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림도 스토리도 매우 개성적인 이 작품은 말랑말랑한 일본산(産) 판타지나 허황된 폭력물에 길들여진 한국 독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빨리 2권이 출시되길 간절히 바라는, 오랜만의 한국산(産) 수작(秀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