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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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박물관 스프링갈드

“이것이….경감님께서 찾으시는, 1837년부터 온 런던을 떠들썩하게 만든 괴인 ‘용수철 다리 사나이’의 다리입니다.” “꼭두각시 서커스”의 후지타 카즈히로의 단편집 “흑박물관 스프링갈드”가 한국어 판으로 출시되었다. 개성 넘치는 독특한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 박진...

2011-07-20 김진수
“이것이….경감님께서 찾으시는, 1837년부터 온 런던을 떠들썩하게 만든 괴인 ‘용수철 다리 사나이’의 다리입니다.” “꼭두각시 서커스”의 후지타 카즈히로의 단편집 “흑박물관 스프링갈드”가 한국어 판으로 출시되었다. 개성 넘치는 독특한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한국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후지타 카즈히로는 이번 작품에서 19세기의 런던을 무대로 ‘고딕 활극’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풍을 선보였다. “피해자는 메리 스티븐스, 연령 21세, 사인은 아마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이어지는 다섯 줄의 열상, 그 중에는 척추까지 파고든 것도 있고….굉장한 힘입니다.. 순경 두 사람이 높은 소리로 웃으며 뛰어오르는 괴인을 봤다고 합니다.” “용수철 다리 잭”은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떠들썩하게 한 정체불명의 괴인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조지 3세의 손녀인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1819-1901)가 18살에 대영제국 여왕으로 즉위한 1837년부터, 서거한 1901년까지 64년 간의 치세를 말한다. 일본의 쇼와 시대와 같은 길이로, 이때 경제와 군사력의 상승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했다. 그 1837년 가을에 ‘용수철 다리 잭(JUMPING JACK 또는 SPRING HEELED JACK)’이 출현했다. 당시 런던은 인구 200만 명,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성장 초기로 도시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갑작스러운 인구 유입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번잡하여 치안이 불안해 여성들은 야간에 외출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용수철 다리 잭”은 그 시기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도시괴담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은 3년 전의 용수철 다리 잭이 아니야, 지금 돌아다니는 살인귀지….이제 당신은 귀찮게 하지 않겠어.” 경위가 어떻든 간에 후지타 카즈히로는 19세기 런던에 실제로 존재했던 괴인 “용수철 다리 잭”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고, 거기에 자신만의 상상을 덧붙여 아주 멋진 로맨스 활극을 만들어내었다. 후지타가 창작한 “용수철 다리 잭”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당시 최고의 기계공학기술로 만든, 일종의 강화장치를 단 인간이다. 날카로운 강철손톱과 하늘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스프링 의족을 달고,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친 채로, 아무런 악의 없이 그저 자신의 여흥을 위해 지나가는 여자들을 놀래 키면서 즐거워하는, 철없고 돈 많은 젊은 귀족일 뿐이었다. 그러나 후지타는 작품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위해 또 한 명의 “용수철 다리 잭”을 등장시킨다. 원조 격인 “용수철 다리 잭”이 어느 순간 훌쩍 사라진 지 3년 후, 런던의 거리에 다시금 나타난 이 괴인은 단순한 장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하게 여자들을 살해하는 흉측한 살인마로 변해있었다. 런던 경시청은 살인마로 변한 이 괴인이 3년 전의 “용수철 다리 잭”과 동일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3년 전에 내 용수철 다리 장치를 만든 것이, 그 녀석이니까, 그리고….녀석은 나의 열렬한 팬이지.” 두 명의 “용수철 다리 잭”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 흥미진진한 “고딕 활극”은 아름답고 쓸쓸한 러브스토리로 변모한다. “용수철 다리 잭”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남자가 인생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흥미진진한 쾌락을 찾아 다니다 도달한, 새롭고 신나는 여흥일 뿐이었다. 그러나 힘있는 남자 한 명의 쾌락과 여흥을 위해 힘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이 부조리한 상황은, 강철 같은 심지에 어울리지 않게 한쪽 다리를 저는 가녀린 외모의 여인에게 “용수철 다리 잭”이 강렬한 따귀 한 방을 맞으면서 끝이 난다. 마치 슬픈 운명처럼, 그 여인은 남자의 저택에 메이드로 일하게 되었고, 따귀를 맞던 순간부터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자는 신분의 차이를 떠나 그녀를 가슴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와 절친한 후배 변호사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고, 그녀가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알고 있는 남자는 그저 말없이 그녀의 곁을 지키며 물질적인 후원을 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또 다른 “용수철 다리 잭”이 나타나 런던 거리를 활보하며 여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꺼져, 프란시스, 이 앞은 경건하고 선량한 자 외에는 출입금지다….우리는 들어갈 수 없어.” 이 작품의 제목이자 배경으로 등장하는 “흑박물관 스프링갈드”는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야드’라 불리는 런던 경시청이 화이트 홀에 설립된 것은 1829년으로, 범죄수사 자료의 보관을 위해 흑박물관(BLACK MUSEUM)이 그 건물 지하에 만들어진 것은 1874년의 일이다. 10년 후에는 그 곳도 좁아져 2층 범죄자 관리부의 한 방으로 옮겨졌다. 흑박물관을 설립하기 전, 뉴게이트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은 소지품이나 의류 등을 모두 압수당하고 그것을 담당 교도관이 멋대로 매매해서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죄수의 재산관리를 담당하던 네임 경감은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법률을 정할 것을 신청, 법률은 1869년부터 발효되었다. 범죄자의 소지품은 석방할 때 되돌려주고 필요한 증거품이나 자료가 될 물건은 보관해서 앞으로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당초 흑박물관에는 주로 범죄에 쓰인 흉기들이 전시되었지만, 이윽고 현장이나 가해자, 피해자의 사진, 수사도구, 조서부터 범죄자나 피해자의 데스마스크까지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흑박물관은 현재도 존재하며 어디까지나 수사 자료로서 경찰 관계자에게만 공개되고 일반인은 열람할 수 없다고 한다. “축복의 종소리가 울리는 교회 한 귀퉁이에서…..누가 울어…나는… 다음 장난을 생각하고 있다고…다음에는 이상한 여자 같은 건….만나지 않는 장난을….” “흑박물관 스프링 갈드”는, “용수철 다리 잭”에 관한 6개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그 외전 격인 “마더구스”로 이루어져 있다. 외전인 “마더 구스”는 “용수철 다리 잭”의 주인공인 윌터 스트레이드의 조카 줄리엣이 등장해 사건을 이끌고 나간다. 총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작품도 본편 못지않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후지타 카즈히로가 창조한, 19세기 런던에 실재했다는 괴인 “용수철 다리 잭”의 애잔한 러브스토리를 한국의 독자들도 즐겁게 감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