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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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로마 공중목욕탕)

“건국 8백여 년....과거 로마가 이마큼 윤택했던 시절은 분명 없었을 테지, 시내 곳곳에는 4, 5층을 넘는 인술라(고대 로마의 건축물, 중하층 서민들이 살았던 일종의 아파트)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나 있으며...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고 인종 또한 다양하다...

2011-06-30 김진수
“건국 8백여 년....과거 로마가 이마큼 윤택했던 시절은 분명 없었을 테지, 시내 곳곳에는 4, 5층을 넘는 인술라(고대 로마의 건축물, 중하층 서민들이 살았던 일종의 아파트)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나 있으며...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고 인종 또한 다양하다. 대체 로마 제국의 경계선은 얼마나 넓어졌단 말인가....?” 오랜만에, 아주 독특하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한, ‘기분 좋은 유쾌함’을 전달해주는 웰메이드 만화를 한 권 만났다. 작가는 야마자키 마리, 제목은 <테르마이 로마이>로 현재 애니북스를 통해 한국어판이 1권 발행되었다.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기사 루시우스가 현대 일본의 공중 목욕탕으로 타임 슬립하게 되고, 거기서 발견한 기상천외한 아이템들을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 써먹는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아주 재미있고 독특하게 만화로 바꾸었다. 야마자키 마리라는 이 작품의 작가는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기도 하고 그간 알려진 바가 없어서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작가 소개를 잠시 인용해 소개해 보도록 한다. ‘야마자키 마리’ : 1967년 도쿄 태생, 미션 스쿨에 다니던 14살 때 독일과 프랑스로 홀로 떠난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 도예가의 초청을 받아 17살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피렌체의 예술학교에서 11년 간 유화를 배웠다. 가난한 피렌체 유학 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본인의 블로그에 만화를 그렸으며 1996년 이탈리아 생활을 그린 에세이 만화로 데뷔했다. 14살 때 만난 이탈리아 도예가의 손자(이탈리아 인)와 결혼하여 중동,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지에 살다가 2011년 현재 남편의 부임지인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테르마이 로마이>로 2010년 일본 만화대상, 제 14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만화대상 수상 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수상 소감을 생중계로 전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유명인>, <2050년의 나에게서>, <맹렬! 이탈리아 가족>, <테르마이 로마이>,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 <지구연애>, . 작가의 프로필을 접하고 나서야 <테르마이 로마이>에 등장하는 “독특한 상상력”의 기원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작가라도 처음에 떠오른 자신의 아이디어나 상상력을 만화로 구체화시키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작품이자 상품이기도 한 ‘만화’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생생했던 아이디어가 다소 어색하게 퇴색되어 가는 것은 다반사고, 자유롭게 빛나던 상상력이 거무튀튀하게 변질되어가곤 하는 것이 사실 일반적이라 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즐거움”이 매회 에피소드를 거칠 때 마다 더더욱 재미있고 유쾌해지면서 작품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느낌을 읽는 이에게 전달한다. 아마도 작가인 야마자키 마리 본인이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이탈리아인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 중동, 포르투갈, 시카고 등에서 살아보았던 실제 경험이 이 작품의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몇 달 전, 내가 아직 일을 할 수 있었을 무렵 로마 시내에서 우연히 그대가 설계하였다는 테르마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웅대하고 아름다운 경관의 벽화를 바라보며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참신한 발상에 크게 감동하였네.” 테르마이란, 목욕탕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당시 로마에는 공중목욕탕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고 한다. 작가는 단순히 만화만으로 그치지 않고 매회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실제적인 정보, 즉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 실제로 그 당시에 목욕탕에서 쓰였던 도구나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즐겼던 놀이, 고대 로마의 목욕문화 등을 아주 자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해주고 있다. 그 부분을 잠시 인용하자면, “고대 로마인들은 해가 뜨면 하루를 시작해, 오후 1시경에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그 후의 시간을 점심식사와 낮잠으로 때우거나 공중목욕탕에서 보냈습니다. 아무리 조그만 규모의 고대 로마 유적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목욕탕 흔적을 보면, 로마인에게 공중목욕탕은 한 세대 전 일본의 대중탕과 매우 비슷했으리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들에게도 뜨거운 물에 푹 잠기는 일은 생활의 활력소였던 거죠. 입욕요금도 당시의 물가로 보았을 때 매우 저렴해, 아주 가난하지만 않다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누구나’란 노예, 일반인, 부유한 사람, 황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누구나’지요. 이러한 사람들이 모두 무방비 알몸으로 욕탕에 들어가 있는 모습은 마치 꿈처럼 민주적인 광경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황제쯤 되는 사람이나 부자들은 자기 집에도 욕실을 갖추고 있었으니, 그렇게 매일매일 공중목욕탕에 드나들지는 않았을 테지만요, 그래도 개중에는 다양한 역할을 맡은 노예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빈번히 드나들던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멋진 공중목욕탕이 어디에나 있으니, 좁은 자택의 목욕탕이 아니라 넓은 곳에서 천천히, 때로는 그 곳에서 파는 과자나 음료(물로 희석한 포도주)를 들면서 남들과 수다도 떨어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기분도 샘솟지 않았을까요?” -본문 38p, “로마 & 목욕탕, 나의 사랑” 中에서 발췌 <테르마이 로마이> 1권은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와 작가의 글 “로마 & 목욕탕, 나의 사랑” 다섯 개로 구성되어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시작’이란 느낌을 주는 이야기로 이 만화에서 작가가 보여주려 한 모든 요소가 다 갖추어져 있고 2화부터는 점차 세분화된 에피소드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2화에서는 야외에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3화에서는 실내에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가정식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4화에서는 호화로운 개인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5화에서는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휴양지 노천온천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다루고 있다. 비록 1권뿐이지만 재미있게 읽어나가는 동안 작가의 연출 능력과 스토리 구성 능력에 매우 놀라게 된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서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만 가능한 타임슬립이라는 작품의 아이디어 자체도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앞서 얘기한대로 그 아이디어를 상업만화장르의 ‘이야기’로 구체화시켜 재미있게 구성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작가인 야마자키 마리는 어찌 보면 쉽게 질릴만한 이 아이디어를 계속적으로 재미있고 독특하게, 신선함을 유지시키며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풍부한 역사적 지식이나 그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문화적 고찰이 뒷받침해주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아주 재미있고 유쾌한 역사만화이자 아주 독특하고 신선한 목욕탕 만화 “테르마이 로마이”를 독자 여러분께 강력 추천한다.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