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봄의 일이었다. 바라시던 대로 귀 손질을 받으면서 증조할아버지는 편안하게 가셨다. 향년 102세셨다….그 이후, 나는 귀 파는데 빠졌다. 편안했던 증조 할아버지의 임종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버지와 친척...
2011-05-17
유호연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봄의 일이었다. 바라시던 대로 귀 손질을 받으면서 증조할아버지는 편안하게 가셨다. 향년 102세셨다….그 이후, 나는 귀 파는데 빠졌다. 편안했던 증조 할아버지의 임종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버지와 친척 아저씨에게 여쭈어 봤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른의 즐거움’이라면서…그 날 그 사람이 갖고 온 귀이개는 관에 넣어져 할아버지와 함께 재가 되었다.” “심야식당”의 작가 아베 야로가 불혹의 나이에 제 53회 신인코믹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가로 데뷔하게 해준 작품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독특한 소재와 기묘한 구성으로 ‘어른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연출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작품이다.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 작가인 아베 야로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작품 “심야식당”이 처음부터 그런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작가 특유의 이런 독특한 스타일에 몇 번의 잡지연재를 통해 연륜이 더해지면서 그렇게 만들어졌구나, 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그의 데뷔작이다. “나는 그 귀이개의 포로가 되었다. 정교하게 다듬은 손톱 끝으로 귀 안쪽에 닿는 대나무의 감촉은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며,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환희를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 귀이개에 작은 방울을 달고 사랑을 담아 스즈노스케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아, 스즈노스케, 나는 이제…한 순간도 너를 놓을 수가 없어.” “귀 파주는 가게”라니, 정말 독특한 소재를 만화로 만들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자신의 귀를 파준다는 것은 묘하게 에로틱한 느낌도 연상이 되고, 귀를 파주는 행위 자체가 그 수혜자에게는 무척이나 기분 좋고 포근한 느낌을 받게 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남자가 여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고, 여자가 그 남자의 귀를 파주는 풍경은, 그들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임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풍경이기도 한 것이다. 에로틱함, 포근함, 사랑스러움, 기묘함 등등 한 마디로 단언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귀 파주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 그리고 그 곳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엮어낸,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만든 매우 유니크한 만화다. 작가는 귀를 파주는 행위를 마치 섹스를 연상시키는 듯한 행위로 대체해 독자에게 접근한다. 간질간질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도입부분은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연인들의 애무처럼, 중간에 깊이, 더 깊이 들어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묘한 긴장감은 연인들이 한 몸으로 결합해가는 일체의 과정처럼, 마지막에 후-하고 불어주며 모든 긴장감이 일시에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는 환희의 순간인 오르가즘처럼, 작가는 “누군가가 귀를 파주는 행위”를 읽는 이가 에로틱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도록 ‘어른들의 방식’을 써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야식당”을 인상 깊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 역시 작가 특유의 독특함을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한 권으로 끝나는 작품이니 경제적인 면으로도, 다음 권을 기다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