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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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사로드 (VASSALORD)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노라 맹세하겠는가.” 일부의 여성 독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을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제목은 “밧사로드”, 캐릭터부터 설정, 작품 배경까지 ‘일부의 여성 독자들’을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한눈에 들...

2011-05-11 김현우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노라 맹세하겠는가.” 일부의 여성 독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을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제목은 “밧사로드”, 캐릭터부터 설정, 작품 배경까지 ‘일부의 여성 독자들’을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재미있고 명확한 컨셉을 가진 작품이다. 「건방진 주인이 너무 좋다!! 쿨한 안경이 너무 좋다!! 귀여운 중년과 섬세한 젊은이가 너무 좋다!! 미국이 너무 좋다!! 크리스트교가 너무 좋다!! 뱀파이어가 너무 좋다!! 여행이 너무 좋다!! B급이 너무 좋다!! ...이상, 너무 좋아하는 것들을 가지고 섞어찌개를 만들었더니 이런 게 나왔습니다. 단행본으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 작가의 말 중에서 단행본에 첨부된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작품의 성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인’, ‘안경’, ‘귀여운 중년’, ‘섬세한 젊은이’, ‘미국’, ‘크리스트 교’, ‘뱀파이어’, ‘여행’, ‘B급’의 ‘섞어찌개’... “밧사로드”는 여기에 열거된 모든 것을 가지고 구성한 ‘뱀파이어 야오이물’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조니 레이프로는 ‘진조’라 불리는 1세대 뱀파이어로 뱀파이어의 기원이 되는 ‘뱀파이어 로드’중 한 명이다. 이들은 흡혈에 의해서 오염된 게 아니라 주술을 이용하여 스스로 ‘타락’한 존재로 햇빛을 쬐어 재가 되더라도 죽음은 찾아오지 않고 한 마리 박쥐가 되어 자신의 관에 숨어들어 7일 밤낮으로 깊은 잠에 들면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바티칸으로부터 ‘유궁(幽宮)의 헤리오가발스(에라가발스라고도 한다. 218년에 즉위한 로마황제로 성적도착증이 심하여 수많은 아내를 거느렸고 여장한 자신을 창부라 칭하며 많은 남성과도 몸을 섞었다고 한다.)’라는 별명으로 불린 ‘진조 뱀파이어’가 바로 그다. 또 다른 주인공인 찰스 J 크리스훈트(크리스)는 뱀파이어이면서도 뱀파이어를 증오하여 스스로 육체의 일부를 사이보그로 개조하고 바티칸에 충성서약을 한 사제(司祭)로, 명성 높은 뱀파이어 헌터다. 그는 피를 입에 대지 않을 뿐 아니라 뱀파이어이면서도 신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자로 불리며 말살해온 배덕자(背德者,여기선 뱀파이어를 의미한다)의 수가 200을 넘긴다고 한다. 물론 크리스가 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명을 제외한 다른 이의 피를 탐하지 않을 뿐이다. 크리스는 주기적으로 조니를 찾아가 그의 피와 몸만을 탐한다.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존재이자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유일한 존재인 창조주, 조니의 육체와 피만을 탐하는 것이다. 그 외의 생활에서는 너무도 고결하고 근엄하며 때론 과격하기까지 한 신의 사제(司祭)로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는 ‘매우 섬세한 성격에 안경을 낀 동정남(童貞男)’이다. “밧사로드”는 이렇게 ‘귀여운 중년’의 외모를 한,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진조 뱀파이어 조니 레이프로와 ‘안경을 낀 섬세한 젊은이’의 외모를 한 뱀파이어 헌터 크리스훈트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이계(異界)의 존재를 사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말 그대로 “B급 영화”와 같은 상상력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의 작품인데, 앞서 얘기한 재료들이 굉장히 조합이 잘 되어서 아주 훌륭하고 맛있는 ‘섞어찌개’가 되었다. ‘일부의 여성 독자들’에게 호감도가 매우 높은 코드는 “동성애”, “뱀파이어”, “주인과 노예(이 작품의 스토리 상, 주인 역할은 조니 레이프로이고 노예 역할이 크리스이지만 ‘야오이’적인 관계에서는 조니가 ‘수’, 크리스가 ‘공’이다. 주인공의 낮과 밤의 역할이 서로 뒤바뀐다는 것도 이 작품이 ‘일부의 여성 독자들’에게 매우 높은 인기를 끄는 요인 중 하나인 것 같다.)” 같은 것인데 이 세 가지의 코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뒤섞여있는 작품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마스터랑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 “밧사로드”의 1차적인 매력은 일단 훌륭한 작화다. 만화는 글과 그림이 조화된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림이 중요한데 이 작품의 작화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캐릭터, 액션, 배경, 감정처리 등등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2차 적인 매력은 아주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이 작가의 전작이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스토리를 엮는 능력이 훌륭하다. 연출법도 액션과 로맨스를 적절히 안배하여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편집방식을 쓴다. 이 계통에서 상당한 안목과 경험을 가진 작가와 편집자가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주인공인 조니와 크리스외에도 아주 매력적인 인물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한다. 조니와 쌍둥이이자 비슷한 능력을 가진 진조 뱀파이어(일단 성별은 여성)인 조이 레이펠, 조니 레이펠을 마스터라 부르며 따르는 무시무시한 뱀파이어 헌팅 능력을 자랑하는 체릴(귀여운 소녀 수녀로 나오는 체릴은 ‘고(故) 아놀드 파오레의 피와 저주를 이은 자’로 "토요일에 붉은 양막을 두르고 뱀파이어에게 유효한 특수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자"이며 사후에는 뱀파이어가 될 운명을 가진 소녀다.), 탁월한 수사 감각과 27년간의 현장 경험을 고루 갖춘 크레이그 경부, ‘인큐버스(몽마; 夢魔)’라 불리는 조니의 천적 악마 발리 등등 지루할 틈 없이 등장해주는 매력적인 조연들 덕에 작품의 스토리가 더더욱 탄력이 붙고, 조니와 크리스의 과거 사연이 부각되며,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하늘이 그대를 거절하기를....대지가 그대의 육체를 받아들이지 않기를...우리가 그대를 속박하여 썩어가지 않게 하기를...자아, 외쳐라...세 가지와 바꾸어 나의 힘을 손에 넣으리라...그대의 이름은...” 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주인공 조니는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길 원해 악마와 계약을 맺은 남자다. 작품의 중간 중간에 가끔씩 회상장면으로 등장하는 조니의 인간시절은 그가 매우 품격 있고 명예로운 기사(騎士)였음을 암시한다. 크리스가 꼬마였던 시절 조니는 한때 신부로 활동한 적도 있으며, 그 시절 꼬마 크리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조니가 크리스를 뱀파이어로 만드는 장면을 보면 이 둘 사이의 사연도 무언가 애잔한 사이로 보여 진다. 액션, 로맨스, 에로스를 모두 갖춘 “밧사로드”는 어둠의 경로에 익숙한 일부의 여성 독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을 작품이지만, ‘북박스’의 타이틀을 달고 정식 라이센스 한국어 판으로 현재 4권까지 출시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작품을 즐겨보시는 독자들에게는 강력하게, 그렇지 않은 독자들께는 아주 살짝, 추천하고 싶은 재미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