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이문 (東京異聞)
“그 도시는 진흙 속에서 떠올라 계속 성장하였습니다. 에도항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힘을 양분으로 비대해져온 이 땅이 ‘에도’에서 ‘동경’으로 그 이름이 바뀐 것은 메이지 원년 칠월의 일, 그 이듬해의 동경 행행(行幸)으로 조금씩 진전을 보이더니 그대로 천도, 수도의 칭호...
2011-05-04
유호연
“그 도시는 진흙 속에서 떠올라 계속 성장하였습니다. 에도항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힘을 양분으로 비대해져온 이 땅이 ‘에도’에서 ‘동경’으로 그 이름이 바뀐 것은 메이지 원년 칠월의 일, 그 이듬해의 동경 행행(行幸)으로 조금씩 진전을 보이더니 그대로 천도, 수도의 칭호를 얻게 되자, 힘의 추세는 확실해지는데… 그것이 진흙에서 태어난 도시의 귀착된 모습입니다” “십이국기”로 유명한 소설가 오노 휴우미의 미스터리 소설 “동경이문”의 코믹스 판이 한국어 버전으로 출판되었다. 소설을 만화로 바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인데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코믹스 판 “동경이문”은 작화와 연출이 이야기의 내용과 절묘하게 잘 매치된 좋은 사례라 하겠다. 총 4권으로 이루어진 “동경이문”은, 일본의 수도가 교토에서 동경으로 바뀐 지 29년이 지난 시점에서 동경의 밤거리를 무대로 벌어지는 미스터리 극화다. ‘문명과 개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탁류에 몸을 맡겨 흘러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허상과 공포에 휩싸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 메이지 정부에서 외교관으로 많은 공적을 쌓은 타카츠카사 공작가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작품의 주요 줄거리로 삼되,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변해가는 과도기의 혼란했던 동경의 모습을 유려하고 묵직한 필치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언제 봐도 신기해, 올바른 것은 밤인지, 낮인지, 아니면 둘 다 맞는 거고 낮과 밤이 반복되는 것이 바른 것인지, 낮과 밤, 빛과 어둠이 반복되는 것이 바른 거라면, 사람의 마음 또한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둠에 떨어지는 것은 아무도 칭찬하지 않잖아, 사람은 낮으로만 존재하는 것, 그것만이 옳다고들 하니까” “동경이문”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요괴 또는 귀신이라고 불릴만한 존재들은 여럿 나온다.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인다는 화염마인, 영혼을 자루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팔아먹는다는 영혼장수, 길 가는 사람의 목만을 노리는 칼잡이 이아이누키, 늑대를 몰고 다니며 갈고리 손톱으로 사람들을 습격하는 기모노 차림의 여인 야미고젠, 수수께끼의 행상 요미우리, 요괴 한냐의 얼굴이 걸려져 있는 포장마차 등등 기묘하고 음산한 존재들이 아직까지는 가로등이 밤의 어둠을 다 밝혀주지 못하는 동경의 밤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 제도일보의 기자 히라카와는 이러한 동경의 밤거리를 무대로 한 기행들을 요괴나 귀신이 아닌 ‘사람의 짓’일거라고 단정하고 아사쿠사에서 떠돌이 광대 일을 하는 만조와 함께 사건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려 노력하지만 그러던 와중, 타카츠카사 가문의 후계자 싸움에 관여되면서 사건은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동경이문”은 원작인 미스터리 소설의 분위기를 한껏 멋스럽게 살린 작화와 소설의 긴장감을 만화적으로 잘 연출한 구성력이 매우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런 류를 좋아하시는 독자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