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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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파 신장판

“몇 년 전 나의 오너는, 내게 가게를 맡기고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언젠가 돌아오기는 할는지…. 난 로봇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코단샤의 월간 만화 잡지 “애프터...

2011-04-14 박진이
“몇 년 전 나의 오너는, 내게 가게를 맡기고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언젠가 돌아오기는 할는지…. 난 로봇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코단샤의 월간 만화 잡지 “애프터눈”에 연재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시나노 히토시의 작품 “카페 알파”가 ‘신장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시금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품 자체의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세기말 묵시록’적인 세계관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여유로운 작풍을 갖고 있는 이 이례적인 작품은, 많은 팬들에게 ‘여유로움과 느림의 미학’을 전파하는 매우 독특한 SF라는 평을 받아왔다. 일반판 1권이 발행되고 무려 13년 만의 신장판 발행으로, 많은 팬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작품이다. 표지 일러스트가 교체되고 컬러 페이지가 모두 복원되었으며, 판형도 국판 사이즈로 바뀌어 전 10권으로 재편집되었다. 그 동안 절판도서로 분류되어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했던 많은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몇 년 전까지의 ‘대도시 요코하마’가 꿈만 같다.…지금은 느긋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사람들의 거리’, 요 몇 년 동안 세상도 꽤 많이 변했다. 시대의 황혼기가 이렇듯 느긋하고 평화스럽게 오는 것이라니, 나는 앞으로도 쭈욱 이 황혼의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겠지. 내겐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카페 알파”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SF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일본의 많은 팬들은 이 작품에 “치유계(治癒系) SF”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말 그대로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치유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뜻인데, 팬들에게 이러한 찬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외딴 곳에 자리잡은 카페 알파를 지키는 것은 로봇 알파다. 그녀는 주인이 여행으로 비운 자리를 대신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 카페의 방문자는 주유소 주인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손자 타카히로, 배달원 로봇 코코네 뿐이다. 그런 한적한 동네의 서쪽 바닷가에서 알파는 자연의 소중함,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읽는 내내 확실하게 제시되진 않는다. 대부분의 대도로가 파괴되고, 매년 해수면이 상승해 남아있는 도시들이 점차 수몰되어가며, 인간과 똑같은 로봇들이 등장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보면 먼 미래에 어떤 큰 재난을 겪은 후의 지구가 아닐까 하는 짐작만 미루어 할 수 있을 뿐이다. “선배가 내게 자주 보여준 건 그런 ‘단 한철’같은 풍경이었다. 시대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특별히 주목 받지 않으면서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것” 요 근래에 등장한 비슷한 계통의 작품이라면 “수혹성 연대기”를 같이 추천하고 싶다. 세계관도 비슷하고 작품 자체도 꽤 괜찮다. 화창한 가을날 무언가 우울하고 슬픈 일이 있다면, 또는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 “카페 알파”를 읽으며 여유로운 따스함을 느껴보시길 권한다. 만화를 읽으며 마음 한 구석의 무언가가 치유되어간다는 느낌은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