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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집 (破閑集)

“한(恨)이란 얽매여 움직이지 못하는(艮) 마음(心), 한 곳을 맴도는 마음은 곧 슬픔이 되고 슬픔마저 붙들려 갈 곳을 잃으면 그것이 원망이 되어 사람을 해치게까지 되는 법, 때문에 스스로 견디지 못할 남의 원한을 샀다면 스스로 그것을 갚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갓 ...

2011-01-06 석재정
“한(恨)이란 얽매여 움직이지 못하는(艮) 마음(心), 한 곳을 맴도는 마음은 곧 슬픔이 되고 슬픔마저 붙들려 갈 곳을 잃으면 그것이 원망이 되어 사람을 해치게까지 되는 법, 때문에 스스로 견디지 못할 남의 원한을 샀다면 스스로 그것을 갚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갓 미물의 한도 그렇게 무서웠는데 하물며 사람의 한이야...” 파한집(破閑集): 한가로움을 깨트리는 이야기책, 고려 문인 이인로의 시화집이자 비평서이며, 잡록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비평문학서로서도 가치가 있으며, 고려시대의 각판(刻板) 잔존본(殘存本)으로 소중한 것이다. 제목 그대로 문인의 파한적(破閑的)인 문담(文談)이며, 시화(詩話) ·기사(記事) ·자작시(自作詩)와 아울러 신라의 옛 풍속 및 서경(西京)과 개경(開京)의 풍물(風物) ·궁궐 ·사찰 등이 재치 있게 소개되어 있다. 작자가 보고들은 일화(逸話)와 문우(文友) 교제에서 주고받은 문담을 해학적인 수법으로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고대소설의 태동기에 패관문학(稗官文學)으로서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려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네 아비가 일찍 죽어 내 한을 풀지 못했으니 그 죄를 네가 받아라.” 남다른 감수성과 뛰어난 구성력으로 근래에 주목받는 한국 순정작가 윤지운의 “파한집”은 총 6권, 2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으로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판타지, 기담, 퇴마록이라 부를 수 있겠다. 요즘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게임, 소설 등등 문화산업 전반이 워낙 ‘판타지 붐’이어서, ‘이것도 그런 아류작 중의 하나겠지’ 하고 별 생각 없이 잡았다가, 의외의 보물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느낌이 좋은 작품’이었다. “쓸데없는 짓이야,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좋아, 죽는 것이든, 사는 것이든, 주어진 만큼이 가장 적당한 법이지.”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의 당나라 현종 때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퇴마사 일을 하는 젊은 도사 백언과 그의 호위무사이자 친구인 호연의 ‘퇴마기행’을 이야기의 큰 뼈대로 삼고 있는 작품으로, 매 에피소드마다 완성도가 상당히 높고 이야기의 진행방식이 아주 매끄러워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서정적인 대사와 분위기,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호연과 백언외에도,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나 요괴들의 이야기가 보는 이의 가슴을 깊숙이 찔러오는 묵직함이 있다. 또한 너무 무겁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농담처럼 섞어놓은 개그 코드가 아주 적절하게 배치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총 21개의 에피소드 중에 압권은 뭐라 해도 주인공인 백언의 이야기나, 호연의 이야기일 것이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다시 한 번 둘이서 먼 여행을 떠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아직까지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한국 순정만화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