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산 너머 먼 마을에서 말을 타고 찾아온 새색시는 새신랑보다 무려 여덟 살이나 연상이었다. 아미르 하르갈, 스무 살, 카르르크 에이혼, 열두 살” “엠마”의 작가 모리 카오루가 신작을 내놨다. 제목은 “신부 이야기”, 전작인 “엠마”에서 19세기의 영국을 무대로 ...
2010-11-23
김진수
“산 너머 먼 마을에서 말을 타고 찾아온 새색시는 새신랑보다 무려 여덟 살이나 연상이었다. 아미르 하르갈, 스무 살, 카르르크 에이혼, 열두 살” “엠마”의 작가 모리 카오루가 신작을 내놨다. 제목은 “신부 이야기”, 전작인 “엠마”에서 19세기의 영국을 무대로 한 ‘정통파 순정’을 선보였던, 100% 수작업을 한다는 내공 있는 작가로 이번 신작의 무대는 19세기의 중앙아시아다. ‘19세기 카스피 해 인근의 지방도시’라고 권두에 이 작품의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카스피 해’라면 러시아 남서부,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이란 북부로 둘러싸인 세계 최대의 내해(內海)로, 좀 더 쉽게 이해하자면 서쪽으로는 터키, 동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이란에 접경해있다고 보면 되겠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유목민들의 삶을 굉장히 리얼하게 파고든다. 섬세하고 화려한 작화는 말할 것도 없고, 스토리나 설정의 고증수준으로 볼 때 상당한 준비기간을 거쳤을 거란 짐작이 드는데, 작가가 작품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어렸을 적부터 관심 있었던 소재이고 정말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간과 노력이 아니고서는 이런 정도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싶지 않다. “기사(騎射)라는 게다. 옛날엔 다들 저 정도는 했는데...” “기사(騎射)”란, 그 옛날 징기스칸의 군대가 세계를 정복할 때 썼다는 무시무시한 기술이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았다는 이 무서운 전설의 기술은, 그 당시 징기스칸의 군대를 대적하던 유럽의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 같은 것을 보면 “기사(騎射)”를 한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원래는 기마민족들이 사용했던 사냥기술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직까지도 유목을 하는 부락에서 시집을 온 주인공 아미르가 이제는 유목을 하지 않고 몇 대전에 정착한 시댁 식구들에게 ‘옛 기술’을 선보이며 토끼사냥을 해오는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작화의 질감과 독자에게 전해지는 생생한 현장감이 압권이다. “신부 이야기”의 장점은 그간 이쪽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유목민들의 삶을 만화로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크로드’같은 다큐멘터리로 보여 졌던 그들의 삶에 ‘이야기’를 가미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유목민 여성이 정착한 집안의 어린 신랑에게 시집와서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작품의 곳곳에서 신기하다고 느껴질 만한 그들의 생활상이 세밀하게 묘사되는데 특히 2화 ‘부적’편에서는 그들의 건축양식과 축조기술이, 3화와 4화에서는 유목민의 초원생활이 아주 자세히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고증과 묘사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의 이야기도 아주 훌륭한데 독자들은 그저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작가가 21세기의 지면에 구현해 놓은 19세기의 중앙아시아를 재미있고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발견한 ‘웰 메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