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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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혹성 연대기

“우주는 가까워졌다. 적도 상공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로 약 4시간 거리다. 물론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도 있다...사람이 만든 반짝이는 별 하나! 저곳이 내 일터다.” 꽤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그러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집(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

2009-12-30 김진수
“우주는 가까워졌다. 적도 상공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로 약 4시간 거리다. 물론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도 있다...사람이 만든 반짝이는 별 하나! 저곳이 내 일터다.” 꽤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그러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집(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국내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 오시히 마사루의 “수혹성 연대기”다. 일본에서는 “본편 6권+외전”으로 완결되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2권밖에 발매되지 않았다.(2009.10.01 현재) 장르는, 굳이 붙이자면 SF라고 해야 할까? 동일한 세계관 하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일본식 에세이 만화 같은 느낌인데, 막연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체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억지스럽지 않고 따뜻한 느낌의 스토리가 좋았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많은 곳이 물에 잠기고, 달에 사람이 살며, 적도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에만 타면 우주에 나갈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지구.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그려내는 사랑스러운 일상의 모습은 변함없이 반복됩니다. 물의 혹성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미래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이 보내는 따스한 온기를 지금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수혹성 연대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대 배경은 인간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통해 우주로 나갈 수 있는 근미래로 설정되어 있고, 해수면이 많이 상승하여 많은 곳이 물에 잠긴 시대다. 그러나 지구인들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크게 변화가 온 것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우주로 갈 수 있고 달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지구에 살아 왔고 앞으로도 지구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가가 작품의 포인트로 착안한 지점은 바로 이 것이다. 아무리 외부의 조건이 변해가더라도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수혹성 연대기”의 스토리는 대부분 이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사람은 익숙해져서 무감동하게 살 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시작부터 꽤나 괜찮은 러브스토리로 시작하는 “수혹성 연대기”는 배경에 우주나 달이 등장할 뿐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다. 물론 SF라는 장르의 특성상 행성간 통신이나 우주비행 등의 기술적인 이야기라던가, 인류가 꿈꾸는 진보에 관한 학설들도 간간이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양념일 뿐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녀(또는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꿈은 무엇인가? 등등 지구라는 혹성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이 작가의 손에 의해 담담하고 잔잔한 이야기로 각색된다. 보통의 풍경에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무척이나 평범한 이야기로 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우주와 달에서 사람이 살아가고, 해수면이 상승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와는 많이 다른 환경의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혹성 연대기”의 러브스토리는 다른 류의 러브스토리보다 좀까? 로맨틱한 느낌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