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브래드 할리의 마차

“버드나무 집이라 불리는 이 고아원에서 올해 뽑힌 사람은 다이애나라고 하는 소녀였다.” “무한의 주인”의 작가 사무라 히로아키가 문제작을 하나 내놨다. 일본이라면 모를까 이 대한민국에서, 한국어판으로 정발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파격적이고 엽기적이며 무척이나...

2009-12-28 유호연
“버드나무 집이라 불리는 이 고아원에서 올해 뽑힌 사람은 다이애나라고 하는 소녀였다.” “무한의 주인”의 작가 사무라 히로아키가 문제작을 하나 내놨다. 일본이라면 모를까 이 대한민국에서, 한국어판으로 정발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파격적이고 엽기적이며 무척이나 잔인하기까지 한 이 중편집의 제목은 “브래드 할리의 마차”다. “브래드 할리....이 나라에서 4번째로 많은 자산을 소유한 공작가, 지금의 당주는 니콜라 A 브래드 할리. 귀족원 위원이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아이들에게는, 특히 소녀들 사이에서는 다른 이유로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이름이었다. 브래드 할리 성공녀(聖工女)가극단, 꽁꽁 얼어붙은 꿈들이 일제히 녹아내리는 것 같은 그 화려한 무대, 선생님들과 함께 일 년에 한 번 보는 그 무대가 아이들의 작은 가슴을 얼마나 흥분시키는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이 가극을 보러가는 매년 그날은 극의 마지막에 차기무대에 오를 신인들이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 무대에 오르는 3,4명의 소녀들, 그녀들은 모두 브래드 할리 가문의 양녀였으며 소문에 의하면, 모두가 고아출신이라고 했다. 즉 이 마차에 올라타는 것은 소녀들에게 있어서 그 무대를 향한 티켓을 얻는 것과 똑같은 엄청난 일이었다. 정확하게는 티켓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래도 이 시점에서는 양녀가 되는 본인은 물론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있을 친구의 행복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확신하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래드 할리의 마차”는 청소년들에게는 절대로 손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작품이다. 포르노에 버금가는 야한 장면이 있어서도, 내용이 너무 잔혹해서도 아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상상한 그 어떤 ‘정서’가 너무 어둡고 차갑고 냉소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은 마냥 따뜻하지만도 않고, 사람에게 선의를 품고 있지도 않으며, 남의 불행에 대해 누군가 반드시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구원을 꿈꾸어서도 안 되고, 희망을 노래해서도 안 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희망을 꿈꾸어야만 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 이런 인간의 선의, 희망, 꿈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작가가 모조리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그냥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껏 희망에 부풀려 놓았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아주 악질적인 취미이자 기분 나쁜 전개다. 매우 불쾌하다. “돌이켜보면 작은 위화감은 처음부터 있었다. 극단원 양성을 위해 전국의 고아원에서 한 사람씩 양녀로 데려간다고 할 정도로 많이 매년 양녀를 들이는 브래드 할리 가문, 그렇지만 매년 한 번씩 무대에 오르는 소녀의 수는 많아야 4명- 5명이었던 적은 없었다....그렇다면 다른 아이들은? 무대에 오르지 못한 소녀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첫 단편 “돌아보는 고개의 노래 언덕”에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이 작품은, 너무 잔인하고 냉소적이다. 나에게는 이 작가가 이런 잔혹한 참극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궁금할 뿐이다. 인간의 악의? 세상의 부조리?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시스템의 잔인함? 희망과 절망사이의 간극? 글쎄...난 잘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