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샘
“조금 낡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벚꽃이 피는 집에서 우리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아주 ‘예쁜’ 만화 한 편을 찾았다. 타니카와 후미코라는 조금은 생소한 작가의 “생활의 샘”이다. 예전에 몇 작품이 한국어판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을 보...
2009-12-22
석재정
“조금 낡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벚꽃이 피는 집에서 우리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아주 ‘예쁜’ 만화 한 편을 찾았다. 타니카와 후미코라는 조금은 생소한 작가의 “생활의 샘”이다. 예전에 몇 작품이 한국어판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예전 작품도 찾아보려 했더니, 모두 다 절판이다. (항상 이렇게 엇갈리는 인연의 작가들이 있다 ㅜㅜ) 어쨌든, 여기에 소개하는 “생활의 샘”은 여섯 커플들의 사랑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엮은 작품으로, 잔잔하고 소소한 사랑의 사연이 가을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아주 적당한 만화라 하겠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매일 밤마다 구름을 쫓아버릴 거야. 별을 바라보는 요시히토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뻐 보여서 그 옆얼굴만 봐도 나는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생활의 샘”의 특징은 ‘일상’이다.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라거나, 너무나 애틋해서 신파로 흐르는 그런 격정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생활을 같이 영위해 나가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함께 나눈 사이로서의 부부간의 애정을 아기자기하고 상큼하게 보여준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그것이 설령 결혼을 한 사이라 해도) 내 운명적인 사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고저쩌고 하는 공상들을 하는 것인데, 그런 착각이야 말로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나 나오는 환상에 불과하다. 가장 가까운 옆자리에 있는 사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사람이 사실은 그나 그녀에게 맞는 운명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 그 진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사귀는 거라면, 멋있고 돈 많고 자랑할 수 있는 상대도 괜찮겠지만 평생을 함께 할 생각이라면 내가 어떤 모습이든 아끼고 사랑해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 아닐까.” “생활의 샘”을 읽으면서 느낀 점 한 가지는, 작가가 참 제목을 잘 뽑았다는 것이었다. 여섯 커플들의 일상의 조각들을 훔쳐보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지만, 무언가 묵직한 것이 한 순간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이 현실의 무게이자 일상의 힘일 것이다. 사는 것이 무척이나 퍽퍽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속에서 위안을 얻고, 다시 힘을 얻으며, 내일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마치 목이 마를 때 가까운 곳에서 물을 찾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 이 만화가 보여주려 한 ‘사랑’의 힘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제목이 “생활의 샘”이 아닐까? “그날 밤, 딱 한 번 그에게 안겼다. 시마오카는 부드러웠다, 내가 울다 지칠 때까지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시마오카의 체온과 심장고동에 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토록 편안히 잠을 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가을을 건너뛰고 갑자기 여름에서 겨울로 변해버린 느낌의 요즘 날씨지만, 햇볕 잘 드는 오후에 커피숖 한 구석에 앉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을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