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공식 (Ran's Formula)
“이제 이 상황들은 조합이 돼 곧 사고로 이어진다. 물론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분명한 사고!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결과!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동방식과 반복되는 동선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평소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 ...
2009-03-23
석재정
“이제 이 상황들은 조합이 돼 곧 사고로 이어진다. 물론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분명한 사고!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결과!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동방식과 반복되는 동선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평소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 사실들은 매우 유용해진다. 그리고 심사숙고, 보복에 대한 내 결정은 타당한가? 혹시 단순한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축적된 자료로 설계에 들어간다. 필요한 건 동선과 동선이 만나는 교차점, 없거나 모자라면 상황조작이 필요하다. 이번 설계의 뼈대가 되는 확정 경로, 다음은 설계에 필요한 조건 경로, 마지막 설계의 하이라이트인 조작 경로, 경로들이 교차하는 동안 나는 그 곳에 없다. 설계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멋진 설계란, 정교한 장치란 그런 것이다. 내 이름은 란, 이것이 내 보복의 원칙! 나는 어둠의 설계자.” “아색기가”, “누들누드”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새로운 형태의 만화를 한국 시장에 정착시킨 작가 양영순이 아라비안 나이트를 웹용으로 각색한 “천일”로 시동을 걸더니 드디어 자신만의 오리지널 창작 극화를 들고 본격적인 웹툰의 세계로 나섰다. 그 만화의 제목은 “란의 공식”, 평상시엔 눈에 띠지 않는 조용한 학생 란이 사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조작한 ‘설계자’라는 컨셉으로 미디어 다음에서 연재되었다. “나 같은 가난뱅이가 이 비싼 사립명문고를 다닐 수 있는 건, 바로 이 곳의 근로 학생 제도 덕분, 언뜻 배움의 기회를 골고루 나누려는 것처럼 들리는 이것은 저런 양반집 도련님들을 위한 합법적인 머슴제도인 것이다.” 작가 양영순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붙던 수식어는 “참신함”이었다. 일찍이 “누들누드”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성인만화를 만들어내더니, 스포츠 신문에 “아색기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콩트를 연재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쌓았다. 그러나 작가 양영순이 어떤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장르는 촘촘히 짜여진 장편 극화였다. 오랜 기간을 거쳐 이제야 양영순은 자신이 원했던 길로 들어섰다. “란의 공식”이란, 치밀하고 촘촘한 작품을 들고서 “완벽한데도 전혀 밉지 않은 저 녀석이라면 내가 느끼게 될 아쉬움이 덜 할 것 같아” “란의 공식”의 장점은 역시나 참신함이다. ‘설계’라는 컨셉의 참신함은 그간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를 들으며 아무 의미 없이 소비되던 웹툰이란 장르에 ‘스토리’의 힘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이런 새로운 형식의 만화는 업계 사람들이소위 말하는 새로운 희망, 원소스 멀티유즈를 실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