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장인 (유시진 단편집)
“먹히기 싫어? 그럼 무엇으로 네 비행의 대가를 치를 거지? 공짜로는 날 수 없어. 나와 함께 간다면 살려 주지. 날아본 자는 어차피 전처럼 살 수 없어. 원하든, 원치 않든, 둘 중 하나, 먹히든지, 내 세계에 가든지, 수수께끼를 내볼까? 꿈 속에서 나온 생명체는 어...
2009-03-05
유호연
“먹히기 싫어? 그럼 무엇으로 네 비행의 대가를 치를 거지? 공짜로는 날 수 없어. 나와 함께 간다면 살려 주지. 날아본 자는 어차피 전처럼 살 수 없어. 원하든, 원치 않든, 둘 중 하나, 먹히든지, 내 세계에 가든지, 수수께끼를 내볼까? 꿈 속에서 나온 생명체는 어디로 돌아갈까? 나온 꿈으로? 어둠으로? 모든 꿈으로?” 유시진은 수많은 작가들이 개성을 뽐내고 있는 한국 순정만화계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아우라를 내뿜는 작가다. 그의 전작 “마니”나 중단된 “신명기”에서 보여주었던 판타지에 대한 독특한 해석, “쿨핫”에서 보여주었던 현실에 대한 해석, “클로져”, “온”에서 보여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적 감성 등,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타입의 작가라 할 수 있다. “신은 실재(實在), 진실하고 완벽한 존재, 그에 가까이 있는 천사 역시 그래서 부족함을 모르지, 악은 결핍이야. 신의 완벽함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거지, 그래서 인간은 선만큼이나 악을 안다. 그러니 악마란, 얼마나 빈곤하고 결핍되고 갈망에 가득 찬 존재일지…생각해 본 적 있어? 배부른 천사, 넌 결코 날 이길 수 없어. 난 결핍을 아니까” 유시진의 작품은 하나같이 번뜩이는 문학적 문체와 대사, 현학적인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르의 구조적으로 만화라기 보다는 소설에 더 가깝고, 이야기라기보다는 철학과 신학, 형이상학 등 존재론에 더 가깝다. 물론 “마니”나 “쿨핫” 같은 초기작처럼 적절히 대중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상업적인 성과를 올린 작품도 있다. 요즘 들어 유시진은 내러티브 그 자체보다는 세계의 구조, 플롯의 정합성, 작가 자신의 세계관, 캐릭터의 존재론적 의미 등 주로 추상적이고 딱딱한 것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중적 재미는 떨어지고 인기도 예전만 못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추종하는 매니아들은 더 깊어지고, 좁아졌다. “어디 보자…3차원 상의 세계였지. 먼저 ‘시간’, 그리고 ‘공간’, 또 뭐였더라? ‘땅’을 앉히고, ‘대기’를 집어넣고, ‘태양’을 띄우고, ‘달과 별’을 띄우고, ‘물’을 뿌리고, 그리고 여덟 번째로 ‘옐’을 만들었지, 병약하고 수줍은 옐, 그리고 나서 ‘마을’을 만들고, ‘가족’을 만들고, ‘놉’, 그 여자애를 만들었다. 그리고 완결을 위한 ‘인식’. ” 유시진의 오랜만의 단편집 “목걸이 장인”은 이러한 유시진의 극단적인 선택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언제부터인가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한 듯 보이며, 자신만의 세계로 더 깊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런 유시진의 행보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집이다. 총 여섯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 단편집 “목걸이 장인”은 유시진을 알고 있는 팬이라면 무척이나 반가워 할 작품이지만 유시진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겐 아주 곤욕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