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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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세븐틴 (하루카17)

일본만화산업의 진정한 강점은 독특한 소재를 발굴해내는 기획력과 작품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내는 편집부의 취재 및 자료 수집 능력에 있는 것 같다. 원래 만화라는 예술장르가 갖고 있는 본질은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이겠지만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적 명제가 붙...

2007-08-30 석재정
일본만화산업의 진정한 강점은 독특한 소재를 발굴해내는 기획력과 작품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내는 편집부의 취재 및 자료 수집 능력에 있는 것 같다. 원래 만화라는 예술장르가 갖고 있는 본질은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이겠지만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적 명제가 붙는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취향이라는 것이 워낙에 각양각색 천차만별이고 거기에 맞추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야만 하는 것이 출판사의 숙명이라면 만화왕국이라는 일본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소재를 발굴해 하나의 시장으로 성숙시키는 노하우가 정립되어있다. 성인만화의 종류만 보더라도 샐러리맨, 법조계, 보험회사, 금융계, 교섭인, OL, 경찰, 연예인, 향락산업, 폭력단 등 하나의 ‘업종’으로서 굳어진 오래된 세계에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업계에 맞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해왔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이는 작업을 해왔기에, 이러한 기획 작품들이 오랫동안 쌓여가면서 하나의 시장으로 성장한 케이스가 많다. 아마도 이러한 강점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망가’를 파는 세계 최고, 최대의 생산국으로서 일본을 자리매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하루카 세븐틴”은 우연한 계기로 연예 기획사에 취직하게 된 하루카가 자신의 나이를 17세로 속여가면서 연예계에 입문하는 과정을 통해 일본 연예산업의 겉과 속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묘사되어지는 일본 연예산업의 핵심은, 겉으로는 너무나 화려하고 멋진 곳이지만 실상 뒤편에선 배역을 따내기 위해 기획사가 주선한 매춘을 하고, 수시로 관계자들끼리 담합을 하며 거액의 돈이 오가는 로비가 난무하는, 실력과는 상관없는 돈과 권력에 의한 음험한 유혹이 넘쳐나는 세계다. 물론 이 만화에 묘사되어진 모든 것이 한낱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아무런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에는 작품의 완성도가 매우 리얼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스타’라 불리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키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있기에 연예계라는 거대한 세계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듯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만화가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균형감각에 있다. 사회의 치부를 보여주듯 거대 기획사의 압력과 권모술수를 보여주면서도 주인공인 하루카와 매니저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이면을 품고 있는 이 작품의 균형 감각이 독자들을 작품에 빠져들게 만든다. 밝음과 어두움이 잘 조화된 작품이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우리의 주인공 하루카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자신의 실력과 마음으로 헤쳐 나가며 이런 그녀 곁에는 그녀를 도와주고 성숙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항상 등장한다. 그러나 ‘시스템’이라는 거대하고 부조리한 힘은 항상 그녀의 운명을 굴곡지게 만든다. 어떠한 노력도 어떠한 바람도 그들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듯 보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매듭이 풀리듯이 계기가 찾아온다. 그 계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어서 독자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만화의 진정한 매력이다. 한 순간 모든 갈등을 풀어내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계기, 때로는 라이벌의 질투가 우정으로 바뀌게 되고, 거대한 기획사조차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순리가 작용하기도 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드는데 있어 매우 탁월한 작품이다. 그리고 16권 째에 들어설 무렵이면 정말로 무서운 세상의 진리 하나를 독자에게 깨닫게 해준다. 작가가 하루카의 인생역정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묵직한 메시지 하나, 그것은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