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名作)의 칭호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에 따라 각각의 가치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차피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만의 명작’으로서 주관적인 기준을 정해놓았다.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명작의 기준은 ‘재미’다. 뭐라 해도 만화는 재미있게 보는 것이 최고라는 거라 믿고 있다. 아무리 내용이 심오하고 스타일이 화려해도 재미가 없는 만화는 만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 명작의 기준은 ‘공감’이다.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무언가 내 마음 속에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그것이 사소한 것이든 묵직한 것이든 상관없이 작가의 메시지에 독자가 반응하게 되는 과정, 이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명작의 기준은 ‘과정’이다. 연출법이나 진행법과도 통하는 이야기이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뜻이다. 독자가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있어 위화감이 들지 않으면서 공감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 이렇게 세 가지가 ‘나만의 명작’의 기준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만족시킨 ‘나만의 명작’들의 예를 들자면 ‘슬램덩크’, ‘기생수’, ‘원피스’, ‘패트레이버’, ‘고우영의 삼국지’, ‘비트’, ‘벽’,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 ‘몬스터’, ‘H2’, ‘러프’, ‘겨울이야기’, ‘내 집으로 와요’ 등등이 있다. 장황하게 이야기 했지만, 오늘 자로 ‘나만의 명작’에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펌프킨 시저스’를 추가하고자 한다. ‘나만의 명작’의 기준인 ‘재미’, ‘공감’, ‘과정’을 고루 갖추었으며 평상시 SF판타지 장르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대단한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첫 장을 넘길 때는 그림도 왠지 지저분해보이고, 첫 머리에 설정을 설명해주는데, 그 설정 자체가 좀 유치해서 요즘 10대들이 좋아하는 ‘연금술사’ 풍의 아류작이 또 하나 나왔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에피소드가 끝나갈 때마다 이건 절대로 ‘연금술사’ 풍의 아류작도, 우습게 볼 작품도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야기의 완성도가 매우 높고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깊이도 만만치 않아서 현재 나와 있는 7권까지 정말 단숨에 읽게 되었다. 전시(戰時)도 아니고 평시(平時)도 아닌 중간시대의 이야기, 라고 첫 머리부터 시대배경 자체를 확정짓고 들어가는 이 작품의 무대는 가상의 나라 “제국”이다. 근접국가 프로스트 공화국과의 오랜 전쟁이 ‘박빙의 조약’이라 불리는 정전조약을 통해 끝난 지 3년, 기아, 역병, 군대의 도적화 등등 전재(戰災)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전쟁이 치안이 회복되지 않은 제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전재 부흥’을 목적으로 육군 정보부에 설립된 부대, ‘육정 3과(속칭 펌프킨 시저스)’의 이야기다. 제국귀족 중에서 가장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13귀족 중 하나인 말빈가의 공녀, ‘알리스 레이 말빈’ 소위를 실동대장으로 하는 육정3과는 ‘영창에서 온 탈옥마’라는 별명을 가진 오렐드 준위, 기계 전반을 잘 다루고 대원 중 유일하게 합리적인 마티스 준위, 사무요원 스테킨 상사, 전반적인 책임자이자 주도면밀한 수완가인 3과 과장 헝크스 대위, 전령견 머큐리,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합류하게 된 수수께끼의 부대 901 ATT 출신의 란델 하사 등 6명의 구성원과 한 마리의 개로 이루어진 부대다.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인랑’과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 등의 영향을 받은 듯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온다.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접근, 모든 것을 잃은 상실감에서 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극한 대립, 신분과 계급이 주는 모순, 사건의 배후에 자리 잡은 음모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개성 있는 조연들, 각자의 이권을 위해 움직이는 각각의 부대, 베일에 싸인 연구기관과 비밀결사 등 모든 것은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되지만 곁가지가 스스로의 의지로 계속 증식되어만 가는, 전쟁 직후의 혼돈의 시대에서 육정 3과의 활약상을 읽기 전에 작품의 배경이 귀족과 평민, 왕족이 존재하는 ‘제국’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극복할 수 없는 신분제도 아래서 각자의 이권을 챙기려는 각각의 입장들이 명확히 대두되는 가운데 전쟁 직후의 제국은 말 그대로 혼돈의 시대다.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개개인의 인간 군상들의 절절한 사연 속으로 파고들어가 ‘전재부흥’을 이루려하는 육정 3과의 활약은 때론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지만, 때론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의 묵직한 슬픔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전쟁과 국가시스템, 각 부서의 헤게모니를 떠나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평화의 시대라는 미명하에 양극화의 흐름 안에서 병들어가는 현세의 독자에게 자신이 창조한 판타지 세계 속의 인물들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인지 작가는 진지하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