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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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요즘 문화 산업계 전반에서 마케팅 문구들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작(大作)”이란 과연 무엇일까? 영화라면 여름이나 연말의 성수기시장을 노리고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흥미진진한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블록버스터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만화는 매우 다른 듯하다. 짧은 소견이지...

2007-08-08 석재정
요즘 문화 산업계 전반에서 마케팅 문구들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작(大作)”이란 과연 무엇일까? 영화라면 여름이나 연말의 성수기시장을 노리고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흥미진진한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블록버스터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만화는 매우 다른 듯하다. 짧은 소견이지만 만화에서 대작(大作)이라 함은 명작(名作)과도 상충되는 의미이자, 베스트셀러이면서도 동시에 스테디셀러인 훌륭한 작품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만화의 명작이라 하면 흔히들 고우영의 “삼국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이두호의 “임꺽정”, 허영만의 “오! 한강” 등을 꼽지만 대작이라 하면 대개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꼽는다. 이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워낙에 좋아하는 비극적인 스토리에 프로야구라는 역동적인 소재를 종이 지면 안에 거대한 스케일로 담아내었던 작품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한국 만화시장을 일거에 재편해버린 사상 초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기에 대작이라는 칭호가 붙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SF만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패트레이버”는 작품을 기반으로 한 OSMU를 통해 이루어진 거대한 산업적 외연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의 내용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상품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독자의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킨 대작이자 명작이라 할 수 있다. 기실 우리나라에서는 “패트레이버”의 원작만화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가 만든 극장판 “패트레이버”가 더 유명하다. 바로 얼마 전에도 한국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갱신한 영화 “괴물”이 “패트레이버”를 표절했다며 꽤나 시끄러웠을 정도로 문화계의 일각에서는 명작이라 추앙받는 작품 중에 하나다. 그러나 여기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패트레이버”라 명명된 많은 장르별 상품의 원류가 되는 원작 만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대원에서 전 22권 발매) 이다. 작품의 무대는 근미래의 동경, ‘바빌론 프로젝트’라 명명된 엄청난 규모의 매립작업 및 택지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조작형 로봇 ‘레이버’가 범죄에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설된 “경찰청 특수 2 과” 레이버 부대원들의 이야기로 그 뛰어난 상상력과 치밀한 현실성이 잘 조화된 그야말로 명작이다.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작가가 창조해 놓은 매력적인 상상의 공간이 너무나 리얼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을 정도로 설정이나 연출이 정말 치밀하다. 작가가 레이버라는 특수한 용도의 기계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라는 점이며 문명이든 문화든 아무리 고급스러운 단어로 치부해봤자 결국 자연이라는 스스로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냉혹한 진리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인간, 해결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심오한 삶의 진리를 레이버라는 특수한 소도구를 통해 매 에피소드마다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작가의 능력엔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 자체가 뛰어나서 이 작품을 명작이나 대작의 반열에 올려놓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타 작품들과 비교해서 무엇보다도 가장 뛰어난 점은 책을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작품의 만화적 재미에 있으며 각자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 있지만 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범죄에 활용되는 막강한 신형 레이버에 맞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패트레이버라는 경찰용 신형 레이버의 활약이 읽는 이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해주고 있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