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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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Emma)

프로야구에서 오버핸드 스로(overhand throw : 머리위로 팔이 가는 구질의 속도가 가장 빠르고 가장 보편적인 투구방법)투수가 등판하면 해설자들이 그 투수의 폼을 가르켜 “정통파 투수” 또는 “본격파 투수(일본식 용어)”라고들 한다. 이 투구법의 특징은 자신...

2007-07-27 석재정
프로야구에서 오버핸드 스로(overhand throw : 머리위로 팔이 가는 구질의 속도가 가장 빠르고 가장 보편적인 투구방법)투수가 등판하면 해설자들이 그 투수의 폼을 가르켜 “정통파 투수” 또는 “본격파 투수(일본식 용어)”라고들 한다. 이 투구법의 특징은 자신의 몸무게와 키킹에서 받은 힘을 거의 소비시키지 않고 그대로 끝까지 끌고 가서 공을 던질 수 있기 때문에 "강한 공"을 타자에게 뿌릴 수 있다는 점으로 가장 극단적인 오버핸드 폼으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던 대표적인 투수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노모 히데오를 들 수 있다. 만화에도 장르별로 “정통파 투수”가 존재할까? 야구라는 스포츠와 비교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찌됐든 만화가는 작품을 발표하기에 앞서 치밀한 사전 준비와 연습, 살인적인 스케줄의 연재를 거쳐 단행본을 독자 앞에 던져놓는다는 점에서 투수라는 포지션과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투수에도 오버핸드, 사이드 암, 쓰리쿼터, 언더핸드 등 폼과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투수들이 존재하듯, 만화가들의 세계도 자신만의 개성과 세계관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작가가 존재한다. 작품으로 독자들을 접할 때 그 작가만의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존재하지 않으면 쉽게 잊혀질 것이며 어떤 형태의 개성이든 스타일이든 간에 그 분야에서 경지에 이르면 명작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만화가와 투수들 사이의 공통점을 잡아낼 수 있다. 지인의 소개로 여기에 소개하는 “엠마”를 읽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야구로 치면, “정통파 투수”를 만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전통적인 순정만화의 문법에 맞추어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9회말 2사 만루에서 팀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상대팀의 4번 타자에게 요리조리 피해가는 변화구가 아닌 온 몸을 불사르는 직구로 정면승부를 거는 정통파 투수가 떠올랐다. ‘이야기의 힘’은 만화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문화상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범작과 수작으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만화가에게 작화법이나 스토리텔링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이 연출법 또는 구성 능력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면 그 작품은 수작의 반열에는 들지 못한다. 물론 만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에는 변화구 투수를 연상시키는 작품들도 많이 있지만 흔히들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만화’라는 형태는 대개가 정통파 투수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이다. “엠마”는 만화의 정통파적 기법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 그림, 연출의 세 가지 요소를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작품의 무대는 산업혁명에 다른 변화와 개혁의 시대,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준동하는 19세기 말의 영국이며 그 로맨틱한 시대를 배경으로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올인하는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애절하게 지면에 펼쳐내었다. 특히나 뛰어난 것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세세한 심리묘사의 부분인데 이 다양함과 세세함이 튀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에 녹아있어 이 작품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아름답게 읽혀진다.’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다. 전 7권으로 엮어진 이 아름답고 로맨틱한 드라마는 시원하게 삼진을 잡아내는 “정통파 투수”를 갈망해왔던 야구팬들처럼, 정통파 순정만화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순정만화 독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라 확신한다.